[스포츠서울 | 김용일기자] “국민 눈높이에 맞춰 환골탈태하는 협회가 되겠다.”

승부 조작범 ‘기습’ 사면 및 철회 논란으로 홍역을 앓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KFA) 회장은 지난달 초 이사진이 전원 자진 사퇴하고, 국정 조사 얘기까지 나오면서 본인 역시 사퇴를 고심했다. 그러나 3선을 통해 장기간 회장직을 수행한 그가 추진해 온 여러 프로젝트까지 멈추면 한국 축구는 커다란 혼란에 빠지리라는 견해가 나왔다. 당장 적합한 소방수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결국 그는 쇄신책이 담긴 새 이사진을 구성하고 잔여 임기 1년 8개월을 채우기로 결심했다.

정 회장은 3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25명의 새 이사진을 발표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가장 이목을 끈 건 경기인과 소통을 비롯해 사무총장과 협회 실무를 책임진 전무이사직을 폐지하고 상근 부회장직을 신설한 것이다. 신임 상근 부회장엔 비경기인 출신인 김정배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선임됐다.

정 회장은 “현 상황은 행정 전문가가 조직을 추스르고 의사결정과 홍보 등 협회 행정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며 “(기존 전무가 해온) 일선 축구인과 소통은 경기인 출신 부회장이 영향을 발휘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부회장단엔 최영일(대회운영) 전 국가대표, 이석재(시도협회 대표) 경기도 축구협회장이 유임된 가운데 한준희(홍보) 해설위원과 장외룡(기술) 전 감독, 원영신(여성) 연세대 명예교수, 하석주(학교축구) 아주대 감독이 가세했다. 분과위원장엔 정해성 대회위원장, 마이클 뮐러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 이임생 기술발전위원장, 서동원 의무위원장이 유임됐고 여성 및 윤리위원장에 이윤남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공정위원장에 소진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사회공헌위원장에 김태영 전 국가대표 코치가 새로 선임됐다.

이사진엔 조연상 한국프로축구연맹 사무총장이 유임됐으며 강명원 전 FC서울 단장, 박재순 전 수원삼성 대표, 조덕제 FC목포 감독, 신연호 고려대 감독, 이근호·지소연 남녀 프로선수협의회장, 위원석 전 스포츠서울 편집국장, 국가대표 출신 노수진 영등포공고 교사, 전해림 덕성여고 교사, 박인수 전 전국축구연합회 총무이사가 선임됐다.

25명 중 7명은 유임이다. 정 회장은 기습 사면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낸 이들을 대거 유임한 이유를 묻자 “어느 정도 연속성이 필요했다. 이들이 사면에 관여했거나 권유한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새 이사진 구성에 화두로 둔 건 ‘소통’이라고 했다. KFA는 정몽규 3기 체제 이후 ‘귀를 닫은 조직’으로 불렸다. 주요 현안에 미디어, 팬의 비판에 대해 ‘무대응 원칙’을 고수했다. 기습 사면 사태와 이에 따른 후폭풍도 이런 자세를 고수하다가 떠안은 참혹한 결과였다. 정 회장은 축구 팬의 지지를 받는 한준희 해설위원과 장기간 축구 미디어에 종사한 위원석 전 본지 편집국장을 이사진에 포함하며 개혁 의지를 보였다.

다만 방법론은 여전히 물음표가 매겨졌다. 그저 팬과 미디어에 익숙한 인사를 앉혔다고 해서 능사가 아니다. 요즘처럼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다양한 커뮤니티, 보도 플랫폼이 존재하는 시대엔 전략적이고 진정성 있는 소통 방식이 필요하다.

최근 한 KFA 관계자는 “요즘 같은 시대엔 XX 같은 매체를 더 챙겨야 한다”는 말을 했다가 동료로부터 비판받기도 했다. 여전히 조직에 이로운 목소리만 들으려고 하고, 편 가르기식 소통법을 내세우는 이들이 있다.

축구계에서는 KFA가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팬, 미디어, 경기인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관계를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목소리를 낸다. 그렇지 않으면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는 비판에서 또다시 벗어날 수 없다. 정 회장은 “상근 부회장 등과 상의해서 홍보 기능을 더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부와 소통보다 우선돼야 하는 건 내부 결속력 다지기다. 정 회장은 3선에 성공한 뒤 부서 경계를 허무는 ‘애자일 조직’을 내세웠다가 실패로 귀결됐다. 자신이 운영한 현대산업개발에 도입한 애자일 조직체계는 수평적으로 빠르게 업무를 추진하는 게 핵심인데, 인력이 적은 KFA와 맞지 않는 옷이었다.

특정 업무를 1~2명이 전문적으로 처리해 온 터라 리스크를 안고 갈 수밖에 없었는데 여러 행정 사고를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정 회장에게 ‘노(No)’라고 할 고위 간부가 전무했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기습 사면 사태도 귀를 닫고 ‘예스맨’이 북적거리는 조직의 최후였다. 자연스럽게 조직 내 구성원 간의 갈등도 커졌다.

실무 총괄을 맡긴 김정배 신임 부회장의 어깨가 그만큼 무겁다. 그는 “조직은 생물이라고 비유한다. 처한 상황, 여러 변수에 따라 바람직한 조직 형태가 있을 것”이라며 “협회 내부 여러 문제점을 일으킬 소지가 어떤 것인지 파악하고 시급히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애초 주요직을 두고 경기인 출신 인사는 물론 축구 행정에 잔뼈가 굵은 A씨 등과 접촉했다. 그러나 러브콜을 받은 대다수는 KFA 사정이 워낙 좋지 않은 것은 물론, 정 회장의 임기인 2025년 1월까지 ‘1년 8개월짜리 자리’를 선뜻 수용하지 않았다.

이번 이사진은 그야말로 고육지책으로 꺼내든 쇄신안이다. 그러나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려면 형식을 지양하고 조직 내부부터 ‘진짜 원팀’이 되고 외부와 ‘진심 소통’해야만 한다.

KFA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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