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고진현전문기자] 고교야구에서 또 다시 학폭이 터졌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체육계 폭력은 과연 뿌리뽑을 수 없는 난제일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체육 학폭이라도 분명 예전과 다른 특이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는 신체에 고통을 주는 물리적 폭력이 대세를 이뤘다면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의 강도와 빈도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체육 학폭이 개선됐다고 보면 곤란하다. 시대에 따라 범죄도 진화한다고 체육 학폭 역시 교묘한 방식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모양새다.

물리적 폭력이 대세였던 체육 학폭의 교묘한 진화는 다름 아닌 언어 폭력이다. 심리적으로 민감한 10대 청소년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언어적 폭력이 체육현장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면 더욱 큰 일이다.

그러나 최근 체육현장을 살펴보면 우려는 곧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증오와 혐오의 날 선 말들은 충격, 그 자체다. 어린 영혼을 처참하게 물고 뜯는 언어의 폭력성은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다. 이번에 터진 고교야구 학폭도 언어 폭력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체육계의 학폭이 그동안 끊임없는 교육과 강한 제재를 통해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근절되지 못한 건 분명 큰 문제다. 이는 학폭의 유형이나 원인을 종목적 특성에 따라 접근하는 총체적인 분석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체육계의 폭력을 모두 같은 현상으로 뭉뚱그려 일반화한 뒤 이를 천편일률적으로 적용하면 결코 효과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 체육계의 학폭이 단체 구기종목, 그것도 인기종목에서 상대적으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국내 최고 인기종목인 야구에서 학폭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도 어릴 때부터 치열한 경쟁관계에 편입된 선수들이 스트레스와 갈등을 합리적으로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수평관계의 선수들이 수직적 권력관계로 재편되는 게 폭력사고가 빈번하게 생기는 한국 체육의 구조적 시스템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원만한 조정을 통해 해결하지 못하고 폭력이라는 수단을 통해 해소하는 게 체육 학폭의 시스템인 셈이다. 특히 단체 구기종목은 학폭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많은 선수들을 소수의 지도자가 관리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선수 생활에 대한 지도자의 관리 감독이 여의치 않는 것도 문제점 중 하나다. 지도자의 역할은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만 집중돼 있다. 선수단 생활과 관계에 대한 관리 감독은 관심사항 밖이다. 내부의 문제가 곪아터지고 학폭의 문제로 비화되는 과정에서 지도자의 역할이 축소, 배제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도자들이 이러한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책임소재 탓인지 오히려 사건을 축소·은폐하려는 경향이 짙은 것도 근절되지 않는 체육 학폭의 또 다른 원인 중 하나다. 대부분의 체육 학폭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되는 경우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번 사건 역시 지도자가 아니라 피해 선수의 담임 선생님이 문제 제기를 하며 외부로 알려지게 됐다.

최근 학폭의 의미심장한 현상 중 하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보다 학부모들 간의 사회적 권력이 알게 모르게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가해학생 부모의 사회적 권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사건은 은폐되고, 더 큰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학내에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부모들의 싸움으로 번져 사법적 판단으로까지 옮겨붙는 경우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체육 학폭을 근절할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는 무엇일까? 우선은 과거와 달라진 학폭의 유형별 분석과 그에 따른 해결책 역시 종목별 특성에 따라 정교하고 치밀하게 제시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귀담아둘 만하다.

최근 체육 학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야구는 두 가지 액션플랜을 염두에 뒀으면 좋겠다. 우선 강한 처벌에도 불구하고 학폭이 계속 발생한다는 건 처벌의 강도가 아직 약하다는 방증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범죄 억제에서 가장 중요한 처벌의 엄격성(severity)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반복된 사태를 끊어내는 특단의 대책으로 연대책임론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학폭이 발생한 팀의 전국대회 출전 제한 및 금지라는 강한 징계를 내리는 방식이다. 학폭에 대한 제재가 개인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단체가 감내해야 하는 그런 문제로 인식되면 학폭 문제는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의 관리 감독권을 확대하는 조치가 두번째 액션플랜이다. 이는 훈련방식의 변화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단체 훈련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훈련 방식 또한 단체보다 개인훈련 위주로 변화를 주게 되면 학폭 발생의 가능성을 한결 줄이는 효과를 얻게 될 게다.

많은 선수들을 지켜봐야 하는 야구 지도자들은 그동안 훈련 이외의 생활 관리라는 측면에선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지도자들이 학폭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하지도 않았고, 훈련 외에 선수들을 일일이 관리 감독하는 일 또한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폭력에 대한 체육계의 의식 변화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체육 구성원들이 폭력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폭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폭력을 수용하는 체육문화가 존재하는 한, 폭력은 들풀 같은 생명력을 지니고 계속 잔존하게 된다.

폭력이 생기면 누구나 잘못된 일로 신고할 수 있는 인식의 변화가 체육 학폭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솔루션이다. 생각이 바뀌어야 현실이 바뀌며, 현실이 바뀌어야 비로소 사람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jhkoh@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