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칼럼에서 필자는 ‘호신용품을 구입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내용을 언급했다. 신림동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진 후 호신용품 판매가 부쩍 늘었다는 뉴스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몇몇 지인들이 연락을 해왔다. 본인이 혹은 자녀에게 호신용품을 사주고 싶은데 정말 쓸모가 없는가란 질문과 함께 평소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자신을 보호할 방법을 찾으라면서 호신용품은 왜 못 쓰게 하는가란 질문도 있었다. 이번에는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먼저 일반적으로 흉기를 사용해 사람을 해치는 이들의 행동부터 살펴보자. 특히 우발적이 아닌 이번 신림동과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에서처럼 ‘누군가를 꼭 해치겠다’는 의지를 가진 악한들의 행동이다. 이들은, “나 지금부터 당신을 공격할거야”라는 식의, 겉으로 표시를 내지 않는다. 흉기를 숨기고 몰래 다가가 사각에서 갑자기 덮친다. 그리고, 자신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상대를 해치겠다는 욕구만 치솟은, 극히 흥분상태인 경우가 많다. 이 외에도 많지만, 일단 이 두 가지 특성을 기억해두자.

호신용품을 구입한 당신, 이제 그걸 어떻게 들고 다닐 것인가. 백팩에? 핸드백에? 허리벨트에 차서? 바지 주머니 안에? 어디든 넣어두고 다닌다고 쳐보자. 길을 걷다가 갑자기 옆에서, 뒤에서, 혹은 면전에서 누가 칼을 찔러올 때 과연 그 어딘가에 넣어둔 호신용품을 찾아 사용할 자신이 있는가?

많이 팔렸다는 삼단봉을 예로 들면, 일단 가방 안에서 찾고 빼들어서 한번 크게 휘둘러야 숨겨져있던 부분이 다 튀어나와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 찾고 빼들고 휘둘러 온전한 모양으로 만드는 세 차례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사이에 악한은 흉기로 당신을 최소 세네 번 베거나 찔렀을 것이다. 이는 호신용 스프레이도 마찬가지다. 찾아 빼들고 상대를 향하게 방향을 맞추고 레버를 당긴다. 시간이 너무 걸린다.

미국 경찰이 체포 과정에서 꼭 지킨다는 룰이 하나 있다. ‘21피트 룰’이라는 것인데, 용의자가 칼 같은 흉기를 가지고 있을 지 모르는 상황이면 반드시 안전을 위해 21피트(약 6미터)의 간격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그 간격을 못 지키면 비록 총을 가진 경찰이라도 상대가 갑자기 흉기를 꺼내 달려들었을 때 다치거나 생명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룰이다. 총을 가진 경찰도 이런데, 일반인인 당신이 가까운 거리에서 호신용품을 제대로 꺼내 대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저 멀리서 흉기를 가진 사람이 보일 때 꺼내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그 정도로 거리가 떨어져 있으면 호신용품을 꺼낼 것이 아니라 전력으로 뛰어서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게 맞다.

다음 문제. 혹시 호신 용품으로 칼을 구입한 사람이 있는지? 없을 것이다. 칼로 나를 지키는 시대는 이미 수백년 전에 끝났다. 호신 용품으로 뭔가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샀다면, 대부분은 ‘삼단봉’, 가스 스프레이 등일 것이다. 그럼 그 다음 문제. 막대기를 휘둘러서 뭐든 살아있는 것을 때려본 적이 있는가? 특히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살아있는 것. 이 역시 거의 없을 것이다.

칼 같은 날붙이와 삼단봉 같은 타격 무기는 그 성질이 너무 다르다. 칼은 큰 동작 없이,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상대를 베거나 깊이 찔러 큰 부상은 물론 사망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막대기로 상대가 큰 통증을 느낄 수준까지 때리려면 꽤나 오랜기간 훈련이 필요하다. 그냥 크게 휘두르면 되지 않냐고? 날붙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짧은 간격에서 큰 동작없이 큰 파워가 나오도록 연습해야 한다. 이런 건 무술 수련을 오래 한 사람도 금방 되지 않는, 높은 수준이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 ‘상대를 어떻게든 해치려고 마음 먹은 악한들’은 이미 흥분 상태여서 왠만한 통증으로는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는다. 정말 칼을 든 손이나 팔의 뼈를 부숴버릴 정도의 파워가 나오지 않으면 칼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파워는 두번째 문제다. 빠르게 움직이는 상대의 신체 어딘가를 정확하게 맞힌다는 것부터가 어렵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누군가 흉기를 들고 자신에게 달려드는데 호신용품을 찾아 꺼내려 노력이라도 한다면 그 자체로도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포에 짓눌려 “어어” 소리만 내면서 몸이 굳어버린다. 이번 서현역 사건의 CCTV에서도 괴한과 상당한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망을 가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은 시민들이 보였다. 몸이 굳어 달리지 못 한다면 호신용품을 꺼내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호신용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배우는 것을 먼저 강조한 것이다. 그것도 배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판단을 내리기 전 몸이 먼저 반응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될 때까지 연습을 해야 한다. 흉기를 든 괴한이 보이는 순간, 놀라거나 상황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다리가 괴한의 반대방향으로 뛰도록 만들어 둔다.

삼단봉을 구입할 생각이라면 전문가를 찾아가 최대한 빨리 삼단봉을 뽑아 위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자다가도 바로 뽑아 활용할 수 있도록 몸을 만들어 둔다. 가스 스프레이를 산다면, 언제든 노즐을 상대쪽으로 한번에 정확하게 향할 수 있도록 연습해놓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이런 도구들이 없을 때를 대비해 한 발 더 나아가 맨몸으로 흉기 피습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익혀둔다. 우리 몸에는 이미 쓸모있는 호신용품들이 장착돼 있기 때문이다.

노경열 JKD KOREA 이소룡(진번) 절권도 대한민국 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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