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올해 국내 극장가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약진이다.

상반기 ‘더 퍼스트: 슬램덩크’(이하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에 이어 지난 달 25일 개봉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까지 연이어 흥행에 성공했다. 재즈 밴드 결성 과정을 그린 음악 애니메이션 ‘블루 자이언트’도 지난 달 18일 개봉 이후 음악애호가들의 입소문에 힘입어 9만 관객을 동원하며 선전하고 있다.

국내 최고의 배우들과 연출진이 협업한 한국 영화들이 좀처럼 100만 관객을 넘지 못하고 있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은 개봉하는 족족 승승장구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 극장가를 점령한 일본 애니메이션’이란 말이 과언이 아니다.

3050 남성팬으로 출발한 ‘슬램덩크’는 20대 여성팬까지 흡수하며 올 상반기 극장가와 출판가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누적 관객수는 476만명에 달한다.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원작 만화책이 불티나게 팔린건 물론, 일러스트 화보집, 열쇠고리, 퍼즐, 달력 등 만드는 굿즈마다 족족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연이은 흥행의 시초가 됐다.

지난 3월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은 ‘슬램덩크’가 쓴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 기록을 2달 만에 갈아치웠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초속5센티미터’를 연출하며 국내에서도 충성도 높은 팬층을 보유한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저력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팬들이 N차 관람을 이어가며 입소문이 퍼지자 관객수도 557만명까지 껑충 뛰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이하 ‘그대들은’)의 흥행은 앞선 두 작품과 궤를 달리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0년만에 은퇴를 번복하고 제작한 이 작품은 장단점이 명확하다.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1940년대 도쿄 공습으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가 새 공장을 지어 재혼하면서 한적한 시골로 이사하게 된 소년 마히토가 겪는 신비한 이야기를 그렸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특유의 인간애가 작품 전반에 훈훈한 메시지를 전하지만 일본 제국주의 침략기, 출정하는 군인들에 경의를 표하는 대목이나 타국의 침략에 반성 없는 태도, 죄의식 없이 부유하게 사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아내를 잃은 뒤 처제와 결혼하는 대목 등은 국내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때문에 이 영화는 언론배급시사회를 비롯한 마케팅을 소극적으로 펼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스코어는 꾸준히 상승세다. 평단은 물론 실관람객마저 날 선 혹평이 이어지고 있지만 개봉 첫 주차에 누적 관객수 100만 명에 근접했고 2주차에는 150만 관객을 돌파했다.

한 영화 관계자는 “‘그대들은’을 통해 관객의 인지도와 관심이 높고, 개봉 이후에 다양한 대화를 이끄는 콘텐츠가 흥행의 중요한 요소라고 느꼈다”며 “다소 난해하다는 평가가 있지만 관계라는 틀 속에서 부모와 친구의 소중함을 전하는 점이 관객에게 와닿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올해 초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끈 것과 더불어 다양한 SNS 플랫폼이 개인화 서비스를 진행한 점에 시너지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슬램덩크’를 본 관객이 ‘슬램덩크’ 관련 영상과 자료를 찾다 보면, 일본 음악이나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이 알고리즘으로 뜨면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는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흥행은 팬덤과 SNS 개인화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다. 충성도 높은 팬들이 N차 관람을 이어간 게 개인화 서비스에서 알고리즘 분석을 통해 인기 애니메이션과 연관된 음악이나 작품을 자연스럽게 소개받게 된다. 그러면서 더더욱 다양한 일본 애니메이션을 소개받게 된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일본 실사 영화는 이러한 팬덤을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전하고 있다. 일본 대중문화 전반이 뜨거운 반응이라고 보긴 어렵다. 일본 애니메이션 한정으로 인기가 높은 것”이라고 짚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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