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JTBC 새 토일드라마 ‘닥터슬럼프’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고 있던 두 의사가 인생의 바닥을 친 뒤 점차 성장하는 이야기다.

지난 27일과 28일 방송된 1~2화에서는 주인공인 남하늘(박신혜 분)와 여정우(박형식 분)에선 두 사람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의사가 됐고, 어떻게 추락했는지를 자세하게 묘사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전교 1~2등을 다투며 앙숙이 된 두 사람이 굴곡진 14년을 돌아 건물주와 세입자로 만나게 되는 과정도 그려졌다.

“우울증은 치열하게 산 사람이 얻는 훈장”이라는 말처럼 자기 삶에 최선을 다했다가 마음의 병을 안은 채 만난 두 사람이 서로를 응원하고 의지하며 성장하는 이야기가 ‘닥터슬럼프’다.

주위의 인정과 신뢰를 받았던 두 사람은 하필 인생에서 가장 바닥을 찍었을 때 마주쳤다. 남하늘은 번아웃 때문에 우울증 진단을 받고 백수가 됐고, 여정우는 수십억 원의 빚을 떠안았을 뿐 아니라 사회적인 명망도 거품처럼 사라졌다.

17시간씩 공부해 들어간 의대를 거쳐 대학병원에서 17시간씩 일하는 남하늘은 상사 복이 지지리도 없다. 교수 대신 수술을 맡고 강의 허드렛일까지 도맡아 하지만, 누구 하나 그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다. “못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해도 될 텐데, 자존심인지 언제가 얻어낼 교수직에 대한 열망 때문인지 참고 또 참았다. 마취과 실적이 가장 좋지 않은 게 본인 탓도 아니지만, 화살은 꼭 남하늘을 향했다. 부당한 비난 앞에서도 늘 고개를 숙였다.

번아웃이 극심해진 남하늘은 교통사고가 날 뻔한 위기에서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듯한 대학병원 마취과 의사에 딱히 남부러운 것 없는 인생인데 죽고 싶다는 생각이 이상하다고 여긴 남하늘은 정신과 상담을 받고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무조건 휴식을 취하라는 진단에 고민이 깊어졌다.

지속적인 상사의 압박과 부조리에 참지 못한 남하늘은 직속 교수의 정강이뼈를 걷어찬 뒤 모든 걸 내던지고 퇴사했다. “우울증이라서 회사를 그만뒀다”는 말에 엄마 공월선(장혜진 분)은 “내 딸이 아플 리가 없다”면서 현실을 부정했다. 평생 엄마가 원하는 대로 공부하고 의사까지 됐는데, 아픈 것마저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가 너무 미워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이른바 국내 최고의 스타 의사였던 여정우의 인생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늘 손님이 북적이는 성형외과 의사였던 여정우는 유튜브마저 골드 버튼을 받은 셀럽이다. 유튜브에서 번 모든 수익을 기부할 뿐 아니라, 매년 봉사도 참여해 국민적인 신뢰를 쌓았다.

우연히 마카오에서 온 한 손님을 치료하던 중 문제가 생겼고, 출혈이 심해 사망했다. 여정우는 어떻게든 살리려고 했지만, 결국 손님은 생을 마감했다. 의료사고였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하필이면 CCTV는 그 손님을 치료하던 몇 시간만 삭제됐고, 병원에서 취급하지 않았던 약물이 발견됐다. 그 약물 때문에 손님이 죽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소송전에 들어갔고, 높은 신뢰도에서 얻은 광고 및 기타 수익은 위약금으로 돌아왔다. 빚만 무려 37억원인 채 고향으로 돌아왔다. 자신과 함께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친구들은 “너 때문에 망했다”라며 등을 돌렸다. 모든 사람의 인망을 얻었던 여정우는 외톨이가 됐다.

여정우가 우연히 이사 온 옥탑방은 남하늘의 집이었던 것. 고등학생 때 전교 1, 2등을 다투다 원수가 된 두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바닥을 찍었을 때 만나게 됐다. 여전히 으르렁대긴 하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치고 마음이 공허한 두 사람은 소주 한 잔에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박신혜와 박형식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우울이란 소재를 가벼운 톤으로 풀어낸다. 우울하다고 해서 늘 핏기 없이 죽어가는 건 아니라는 걸 잘 안다는 듯, 힘이 처진 포인트와 밝은 포인트를 적절히 찾아낸다.

특히 한참을 까르르 대다 엄마의 문자를 받고 느닷없이 우는 박신혜와 “네가 우니까 나도 눈물 나잖아”라며 청승을 떨고 함께 우는 박형식이 만들어낸 앙상블은 인상이 깊다. 남하늘과 여정우가 가진 아픔과 상처가 전달되면서도, 꼭 슬프지만은 않게 이들을 바라보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을 만든다.

아무것도 아닌 말에 갑자기 주르륵 눈물이 흐르는 두 사람은 점차 서로의 어깨에 기대 마음의 생긴 상처를 치유해 나갈 것으로 엿보인다. 시대를 관통하는 우울증을 절묘한 포인트로 그려내면서도 웃음과 감동이 있는 ‘닥터슬럼프’는 2회 만에 시청률 5.1%(닐슨코리아 유료방송가구 기준)를 넘기면 순항을 시작했다.

우울과 불안이라는 시대를 관통하는 소재를 시청자가 받아들이기 쉽게 풀어낼 뿐 아니라, 신구가 조화를 이룬 배우들의 열연이 이어지면서 벌써부터 명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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