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다워 기자] 1년간 테스트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그 중요한 과정을 생략하고 이제 와서 새로운 전술을 꺼내들었는데 결과는 ‘대실패’였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31일 오전 1시(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16강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스리백 카드를 활용했다. 김영권과 김민재, 정승현으로 이어지는 수비 라인을 구축하고 중앙에 이재성과 황인범, 좌우 측면에 설영우와 김태환을 배치하는 전술이었다. 스리톱으로는 정우영, 손흥민, 이강인이 섰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해 부임 후 포백만을 활용했다. 친선경기, 월드컵 2차 예선을 포함해 총 10번의 A매치를 치르면서 포메이션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 이번 대회 조별리그 세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클린스만 감독은 거의 4-4-2를 썼고, 큰 틀에서 변화는 없었다.

그런데 클린스만 감독은 갑자기 토너먼트 라운드 첫 경기에서 과감한 전술 변화를 선택했다. 조별리그에서 수비가 크게 흔들린 점을 우려한 계산이었다. 매 경기 실점했고, 말레이시아전에서는 3골이나 허용하며 수비가 무너진 만큼 뒷문을 강하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기대와 달라 작전은 대실패로 끝났다. 한국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실점하며 결국 또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상대의 실수에 의한 트래핑이 절묘한 어시스트처럼 작용하는 불운이 따른 것을 고려해도, 실점 장면 외 경기력 자체가 나빴다.

특히 중원 싸움에서 크게 밀리는 양상에 고전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3-5-2 포메이션으로 나왔다. 투톱 두 명과 중앙 미드필더 세 명이 좁은 간격을 유지해 황인범과 이재성, 두 명뿐인 한국의 미드필더를 압박했다. 전반 종료 후 한국은 볼 점유율에서 4대6으로 밀렸다. 황인범과 이재성은 고립됐고, 허리 숫자 싸움에서 패배하면서 경기를 주도하지 못했다. 당연히 득점 기회도 거의 볼 수 없었다.

결국 클린스만 감독은 후반 19분 정승현을 빼고 박용우를 투입하며 포백으로 전환했다. 변화 후 한국은 경기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허리 싸움에서 상대를 제압해 공을 점유했고, 꾸준히 득점 기회를 만들어 결국 조규성의 동점골로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결과적으로 스리백은 실패였다. 애초에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전술을 토너먼트에서 처음으로 쓴다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다. 지난 2022 카타르월드컵을 앞두고 전임 사령탑이었던 파울루 벤투 현 아랍에미리트 감독은 아이슬란드와의 최종 평가전에서 스리백 전술을 점검했다. 부임 후 내내 포백으로 승부를 봤던 벤투 감독조차 혹시라도 모를 상황에 대비해 스리백을 테스트하는 시간을 가졌다.

반면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해 내내 별 다른 테스트 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가장 중요한 시점에 ‘맞지 않는 옷’을 꺼내 입는 악수를 뒀다. 8강에 진출해 다행이지, 자칫 클린스만 감독의 도박이 한국의 16강 탈락 굴욕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 뻔했다.

가까스로 생존하긴 했지만 클린스만 감독을 향한 의문 부호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호주와의 8강 맞대결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여전히 대표팀의 경기력은 기대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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