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다워 기자] 국적이 아니라 능력이 우선 순위에 있어야 했다.

64년 만의 아시아 정상을 노리던 한국의 꿈은 허탈하게 증발했다. 손흥민과 이강인, 황희찬, 김민재, 황인범, 이재성 등 ‘황금 세대로’ 무장한 한국의 아시아 정복 도전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한국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4강까지 총 6경기를 치르며 2승3무1패를 기록했다. 90분 내로 승리한 경기가 바레인과의 조별리그 1차전 단 한 경기뿐이다. 4강 탈락이라는 결과보다는 대회 내내 나아지지 않은 경기력이 더 문제다.

매 경기 실점했고, 매 경기 위기에 몰렸다. 상대를 완벽하게 제압하는 경기는 없었다. 무슨 축구를 하려는지, 철학이 무엇인지 엿보기 힘든 내용이었다. 알맹이 없이 버티다 결국 한계를 드러내는 결말이다.

어쩌면 ‘예고된’ 참사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1년간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다. 대한축구협회가 계약 당시 발표한 것과 달리 국내에 체류하지 않았고, 자택이 있는 미국에 머무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K리그도 제대로 보지 않았다. 선수 파악을 꼼꼼하게 했을 리 만무하다. 실제로 K리그에서 경기력이 떨어져 있는 선수들이 적지 않게 아시안컵으로 향했다. 실력과 가능성, 에너지를 갖춘 젊은 선수들이 K리그에 많은데, 클린스만 감독 체제에서는 태극 마크를 달지 못했다.

능력도 없었다. 원래 클린스만 감독은 독일, 미국 대표팀을 거치며 ‘전술이 없다’라는 지적을 받았다. 필립 람이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클린스만 감독을 ‘저격’한 사실은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선임 당시에도 독일, 미국 등 여러 외신에서 클린스만 감독을 선택한 한국의 미래를 우려하기도 했다. 아시안컵에서 고스란히 노출한 약점이다. 경기 도중 시도하는 임기응변은 괜찮았지만 자신이 준비한 첫 번째 플랜으로는 늘 위기를 맞았다.

온전히 선수 시절 명성과 외국인이라는 배경만으로 감독을 선택한 게 지금의 참사를 초래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현역 시절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다. 명성 면에서 대표팀 선수들을 이끌 만한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있다는 평가였다. 클린스만 감독 정도는 돼야 빅리그에서 뛰는 유럽파가 많은 선수단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정서가 대표팀 기저에 깔려 있었다.

게다가 2022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을 통해 차기 사령탑도 무조건 외국인으로 가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했다. 국내에도 능력 있는 지도자가 여럿 있지만, 아예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후보 검토 과정에서 등장한 실력 있는 외국인들은 클린스만 감독에 밀렸다.

결과적으로 불성실하고 무능력한 외국인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고, 결말은 처참했다. 선수 파악을 제대로 하지도 않는데다 전술, 전략적인 역량이 떨어지는 외국인 만큼 위험한 지도자도 없다. 종목을 불문하고 사례는 많다. K리그만 봐도 덮어 놓고 외국인 감독을 선택했다가 소위 ‘망한’ 케이스가 줄줄이 있다.

대표팀 사령탑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국적이 아니라 능력이다. 클린스만 감독처럼 무능한데 근무 태만으로 일관하는 지도자를 데려오느니 성실하게 노력하고 연구하는 국내 감독을 선임하는 게 훨씬 낫다.

그래도 외국인에 무게가 쏠린다면 화려한 명성이 아니라 현대 축구의 흐름에 맞출 지도력이 있는 사람을 물색해야 한다. 2024년의 축구는 과거보다 훨씬 정교하고 세밀하다. 더불어 평준화됐다. 리더십이나 카리스마뿐 아니라 세부적인 전술적인 능력을 갖춘 감독만이 경쟁력 있는 팀을 만들 수 있다. 지금 세계에는 선수 커리어는 부족해도 감독으로서 실력과 매력을 갖춘 지도자가 즐비하다. 레이더를 돌려 잘만 찾으면 비싸지 않은 임금으로 영입할 사람이 많다.

선수들도 생각을 고쳐야 한다. 얘기를, 요청을 잘 들어주는, 편하고 친근한 감독도 좋지만, 기본적으로 대표팀을 이끌 만한 역량과 근면함을 갖춘 지도자를 더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감독이 무능력해 고생하는 건 선수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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