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스코츠데일=윤세호 기자] 악몽이었다. 프로 입단 후 가장 막중한 임무 속에서 마운드에 섰는데 최악의 투구를 했다. 야구장 혹은 TV와 핸드폰으로 수백만 명의 야구팬이 바라본 경기. 투구 시간은 극히 짧았다. 2023년 11월8일 한국시리즈(KS) 2차전 선발 등판에서 0.1이닝 4실점으로 조기 강판됐던 LG 최원태(27)다.
고전한 원인은 제구였다. 좀처럼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넣지 못했다. 우타자 기준 바깥쪽으로 공이 크게 빠졌다. 볼카운트가 불리하게 몰렸고 첫 타자 김상수에게 볼넷을 범했다. 2볼넷 2안타로 허무하게 투구가 끝났다. ‘LG는 큰 무대에 약해’, ‘이번에도 우승은 틀렸어’라는 부정적인 시선이 잠실구장을 가득 채운 순간이었다.
마운드에서 내려온 최원태는 절실히 동료를 응원했다. 그리고 LG는 구단 역사에 영원히 남을 대단한 경기를 완성했다. 중간 투수 7명이 8.2이닝 무실점을 합작했다. 오지환의 홈런과 김현수의 2루타, 박동원의 투런포로 대역전승을 거뒀다.
최원태는 당시 심정을 두고 “마운드에서 내려가는데 선수들 얼굴을 못 보겠더라. 정말 너무 미안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봤고 동원이 형이 홈런을 친 순간에는 정말 죄송하고 감사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그는 “경기에 앞서 정우성 배우가 시구를 하시는데 스트라이크를 던지셨다. 잘 생기신 분이 공도 잘 던지고 스트라이크도 넣어서 놀랐다”고 덧붙였다. 이날 정우성은 영화 ‘서울의 봄’ 홍보를 위해 잠실구장 마운드에 올랐다.
아픔을 겪었으나 다행히 팀은 우승했다. 그리고 새 시즌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 팀과 개인 모두에게 중요한 시즌이다. 팀은 2년 연속 우승을 노리는 시즌. 최원태는 프리에이전트(FA)가 되는 시즌이다.
최원태는 LG 스프링캠프가 진행 중인 미국 애리조나 인디언 스쿨파크에서 꾸준히 불펜 피칭에 임하며 계획대로 준비하고 있다. 그는 “준비 상황은 괜찮은 것 같다. FA지만 너무 의욕이 앞서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LG에서 첫 캠프인데 캠프를 하면서 팀 스타일과 동료들에게 많이 익숙해졌다”며 “KS가 끝난 후 안 좋은 일은 빨리 잊고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비시즌을 준비했다. 비시즌 준비한 게 캠프에서도 잘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불펜 피칭 내용은 좋다. 구위와 제구, 그립에 변화를 준 변화구 적응도 순조롭다. 최원태는 다가오는 시즌을 두고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부상 없이 한 시즌을 치르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팀 성적도 나올 것이고 2년 연속 우승도 가능할 것이다. 예전 삼성처럼 왕조를 이루고 싶다”며 “피치클락은 시즌 시작부터 들어간다고 생각하면서 적응 중이다. 아직 잘은 모르겠는데 빨리 던지니까 잡생각 없이 집중되는 효과는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몸 상태에 대한 자신감도 드러냈다. 최원태는 과거 투심 위주로 던지며 구속이 낮았다가 2022년부터 구속이 크게 오른 것과 관련해 “2021년까지는 아픈데도 던질 때가 많았다. 그러다가 내게 맞는 스트레칭을 찾게 됐고 이후 아프지 않고 구속도 잘 나왔다”며 “사실 딱 5분만 투자하면 된다. 5분 스트레칭을 통해 팔이 괜찮아졌다. 세게 던져도 팔이 아프지 않다”고 구위형 투수로 돌아온 비결을 전했다.
모든 것을 갖춘 투수다. 시속 140㎞ 중후반대 포심과 투심. 최고 구속 140㎞를 상회하는 강한 슬라이더도 던진다. 커브와 체인지업까지 다채롭게 구사한다. 작년에는 KS를 포함해 후반기에 고전했지만 그래도 토종 선발 투수 중 상위권에 자리한다.
숫자와 관련된 목표는 규정 144이닝 이상. 최원태는 “일단 144이닝은 무조건 채우겠다. 최소 144이닝은 던진 다음에 남은 경기에 맞춰서 계속 던지고 싶다”면서 “KS에서는 그냥 내가 못 했다고 생각한다. 올해도 KS에 나갈 수 있다고 믿고 나가서는 작년에 못 한 것과 정반대로 잘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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