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하은 기자] “무대에 50년 서는 게 목푭니다. 이제 반 왔네요.”
데뷔 25주년을 맞은 가수 김범수는 이제야 반환점을 돌았다고 말했다. 특별할 건 없다. 달려온 길을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다만 지금까지 치열하게 달렸다면, 돌아가는 길은 숨을 고르고 주변을 돌아보며 천천히 걸어갈 예정이다.
가수 김범수가 22일 정규 9집 ‘여행’을 발매하고 돌아왔다. 2014년 발매된 정규 8집 ‘HIM(힘)’ 이후 무려 10년 만이다. 김범수는 “앨범을 내긴 내야 하는데 지금 용기를 내는 게 맞나 싶었다”고 털어놨다.
김범수는 나얼, 박효신, 이수와 함께 ‘김나박이’로 불리는 대한민국 대표 보컬 4대장이다. 세기말인 1999년 얼굴 없는 가수로 데뷔, ‘그대의 세계’. ‘끝사랑’, ‘하루’, ‘보고싶다’ 등의 히트곡을 내며 실력파 감성 발라드 가수로 입지를 굳혔다.
특히 2003년 3집 타이틀 곡 ‘보고싶다’가 SBS 드라마 ‘천국의 계단’ 메인 테마 곡으로 드라마와 함께 흥행하며 김범수라는 이름 석자를 아로새겼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아이돌 음악과 팬덤 문화가 K팝의 주류가 됐다. 웅장한 발라드 장르가 대중에게 외면받으면서 예전만큼 차트에서 힘을 쓰지 못하게 됐다. 보컬리스트 시대에 전성기를 이룬 김범수에게 정규 앨범발매는 이전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김범수는 “정규앨범에 대한 목마름은 항상 가슴에 품고 있었다. 때가 되면 앨범을 내고 활동하던 시대의 가수였기 때문에 변화한 음악 시장에서 이게 과연 효율이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기성가수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작년 초에 더 이상 미루면 안될 것 같더라. 25년 동안 저를 사랑해주신 분들에게 선물을 들고 인사드리려고 마음 먹었다. 지난해를 다 바쳐서 열심히 준비했다”고 정규 9집을 내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앨범에는 타이틀곡 ‘여행’을 비롯해 ‘너를 두고’, ‘그대의 세계’, ‘걸어갈게’, ‘각인’, ‘나이’, ‘머그잔’, ‘꿈일까’, ‘너는 궁금하지 않을 것 같지만’, ‘혼잣말’, ‘저니(여행 영어버전)’까지 총 11곡이 수록됐다.
싱어송라이터 최유리, 선우정아, 아티스트 이상순, 임헌일, 작곡가 피노미노츠가 작사, 작곡, 프로듀싱으로 힘을 보탰다. 또한 재즈 피아니스트 송영주가 ‘머그잔’의 작곡과 피아노 연주에 참여했다.
팬데믹 시기, 무대에 설 수 없어 좌절했던 시간에 최유리의 노래와 가사가 김범수 마음에 닿았다. 그는 최유리에게 곡을 써줄 것을 부탁했고, 그렇게 타이틀곡 ‘여행’이 탄생했다.
‘여행’은 김범수가 걸어온 길을 ‘여행’이라는 키워드에 함축적으로 녹여낸 곡이다. 최유리 특유의 서정적인 가사가 그의 목소리와 만나 감성을 배가시킨다.
이전 김범수의 발라드 곡들이 절규하고 호소하는 감정들이 많았다면, ‘여행’은 가사가 가진 메시지에 힘을 실어주는 발성과 창법으로 기존 음악들보다 편안한 매력이 특징이다.
“여행 중에 수많은 난관과 어려움, 부딪힘을 겪곤 하잖아요. 저의 25년 인생도 비슷했어요. 그 모든 순간이 이 노래에 담겨있는 느낌이었죠. 노래를 받자마자 여행이란 단어 자체가 앨범을 설명해주는 타이틀이 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앨범 작업이 시작됐죠.”
화려한 작가진뿐만 아니라 뮤직비디오에도 힘을 잔뜩 줬다. 지난달 선공개된 ‘그대의 세계’ 뮤직비디오에는 배우 현빈이, 타이틀곡 ‘여행’ 뮤직비디오에는 배우 유연석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많은 화제를 모았다.
작품에서도 쉽게 보기 어려운 톱스타들과 내로라하는 작가진들이 별다른 고민없이 김범수의 새 앨범 작업에 함께한 건 가요계에서 가수 김범수라는 타이틀이 가진 상징성과 무게감이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김범수는 대한민국 최초로 빌보드 차트에 입성한 가수이기도 하다. 2001년 그의 히트곡 ‘하루’의 영어 리메이크 버전인 ‘헬로 굿바이 헬로’가 미국 빌보드 ‘핫 싱글스 세일스’ 차트에 오른 바 있다.
싸이, 방탄소년단보다 앞선 기록이다. 이번 정규 9집에도 마지막 트랙인 11번 트랙에 ‘여행’의 영어버전이 수록됐다. 최초의 기록을 지닌만큼 그는 K-발라드의 세계진출에 대한 바람도 드러냈다.
“마음 속에는 항상 빌보드 차트에 정식으로 도전해서 좋은 성과를 내고 싶은 바람이 있었죠. 많은 아이돌 그룹이 K팝의 위상을 완전히 격상시켰고 덕분에 K팝이 글로벌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시기잖아요. 저도 노력한다면 충분히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랜만에 새 앨범으로 돌아온 김범수는 오는 4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시작으로 부산, 대전, 전주, 광주, 대구, 수원, 창원 등 총 8개 도시와 해외에서 콘서트를 열고 전국의 팬들과 가까이서 호흡할 전망이다.
지난 25년의 시간은 김범수 본인에겐 어떤 의미일까. 그는 ‘음지’에서 겪었던 산전수전을 음악으로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가수들처럼 처음부터 얼굴이 알려졌던 가수도 아니고, 음지에 있었던 시간이 길었죠. 5년전 급성 후두염이 와서 당일에 공연이 취소되는 사고도 겪었어요. 이 사건 때문에 무대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았죠. 코로나19 때문에 트라우마를 극복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앨범으로 치유될 것 같은 자신감이 붙었어요.”jayee212@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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