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영구결번식을 바라보는 삼척 이계청 감독 눈시울이 빨개졌다. 선수들 눈가에도 촉촉하게 눈물이 고였다. 함께 코트를 누비던 선배와 이젠 작별이다. 등번호 12번도 함께 안녕이다.
한국 여자핸드볼 레전드 골키퍼 박미라(37·삼척시청) 영구결번식이 지난 10일 강원 삼척체육관에서 열렸다.
박미라는 한국 핸드볼 역사상 최초로 2500세이브를 달성했다. 남자부에도 없는 기록이다. 레전드라 부를만하다. 2014인천·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 핸드볼 금메달 2연패를 견인하는 등 국가대표 수문장 역할을 했다.
핸드볼계에서 영구결번은 좀처럼 없다. 프로야구나 프로축구에선 한 팀에서 오래 뛴 경우 영구결번을 갖는 선수가 제법 나왔다.
한국핸드볼연맹에 따르면 남녀 선수를 통틀어 삼척시청에서만 영구결번 선수가 세 명째 탄생했다. 2020년엔 15년 4개월간 선수로 뛴 정지해가, 지난 2022년 같은 팀 유현지가 18년간 뛰고 등번호 13번이 영구결번됐다. 박미라는 2006년부터 2023년까지 18년간 한 팀에서 헌신했다. 다른 팀은 전무하다.
삼척시청의 독특한 문화다. 팀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우수선수에 한해 삼척시청에 특별채용하는 규약도 레전드를 배출하는 데 한몫했다.
박미라는 은퇴 소감에서 “삼척 골문 지키는 일은 버겁기도 했지만, 많은 기록과 추억을 남길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돌부처라는 별명답게 표정 변화가 없었다. 눈물도 없었다. 그저 미소만 옅게 지을 뿐이었다.
경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고 있어도, 이기고 있어도 표정 변화가 없다. 포커페이스다. 현재 H리그 세이브 1위인 삼척 골키퍼 박새영은 “제 롤 모델은 언제나 (박)미라 언니였다. 언니에게 배운 게 너무 많다”며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도 미라 언니 덕분”이라고 말했다.
삼척은 여자핸드볼 강자다. 2010년 이후 우승 3회, 준우승 4회, 3위 5회를 기록했다. 순위권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다. 여기에는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한다. 속공 찬스로 시원한 공격을 보여주는 삼척 특유 색깔이 있다.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리그 4위다. 주전선수 부상 공백 탓이다. 특유의 수비핸드볼이 사라졌다. 촘촘하던 수비는 느슨해졌다. 잦은 실책으로 승부처에서 밀리는 모습이 잦아졌다.
선수들 사기도 많이 떨어졌다. 얼굴에서 보인다.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1위를 밥 먹듯 하다 이런 순위가 낯선 탓일 테다. 마침 국가대표 센터백 김온아(36)가 부상 끝에 돌아왔다. 인천과 경기 후반전에 투입됐다. 김온아는 센터에서 공격을 노련하게 주도했다. 적극적인 돌파로 7m드로를 2개나 얻어냈다. 공격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맞언니 복귀로 연패를 끊었다. 그러자 웃음기가 돌아왔다.
뒤를 든든하게 받치던 박미라는 이제 없다. 삼척 선수들이 오롯이 ‘돌부처 리더십’을 계승해야 한다.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상위권 도약이 가능하다. 네 번째 영구결번 영광도 바로 그 선수 몫이 될 것이다. socoo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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