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이천=김용일 기자] “그 당시엔 내가 잘한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동료에게 고맙더라.”

울림이 있는 말이다. 한국 여자축구 A매치 통산 101경기(38골)를 뛴 ‘리빙레전드’ 전가을이 필리핀전에서 열린 은퇴식 이후 눈시울을 붉히며 이렇게 말했다.

전가을은 5일 이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필리핀과 여자 축구 A매치 평가전 하프타임 때 열린 은퇴식에 참가했다. 대한축구협회(KFA)는 A매치 70경기 이상 출전한 남녀 선수를 대상으로 은퇴식을 시행한다. 여자 선수 중 A매치 하프타임 때 은퇴식을 치르는 건 전가을이 처음이다. 그는 경기 전 매치볼을 전달하는 역할도 했다. 은퇴식 때 KFA 정몽규 회장으로부터 꽃다발 등을 받았다.

한국이 필리핀을 3-0으로 꺾은 이날 전가을은 기자회견에 참석해 선수 생활을 돌아봤다. 하프타임 때 “동료를 보니까 눈물이 난다”면서 울컥한 그는 기자회견장에 앉자마자 다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이렇게 행복하게, 축하받으면서 은퇴하게 돼 영광이다. 살아가는데 무엇이든 못할 게 없을 것 같다”며 “여자 축구 선수로 살면서 많은 행운을 얻은 것 같다. 이 자리에 앉아 기자분도 만나서 얘기하고 팬, 동료에게 인사하게 됐다. 축복받은 선수로 살아왔다”고 감격해했다.

지난 2008년 수원시설관리공단(현 수원FC)을 통해 성인 무대에 데뷔한 그는 국내에서는 인천 현대제철, 화천KSPO, 세종스포츠토토에서 뛰었다. 2010년 수원시설관리공단의 WK리그 우승을 이끌며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현대제철에서는 세 번(2013 2014 2015) 우승을 경험했다. 2016년엔 웨스턴 뉴욕으로 임대 이적하며 한국 여자 선수 최초로 미국 무대를 밟았다. 호주 멜버른 빅토리와 잉글랜드 브리스톨시티, 레딩 등 다른 해외 클럽에서도 활약했다.

2007년 국가대표로 데뷔한 전가을은 A매치 통산 101경기를 뛰며 38골을 넣은 그는 통산 득점에서 지소연(71골)에 이어 2위다. 2015 캐나다 여자월드컵 코스타리카전에서 득점하며 한국 여자 축구가 사상 첫 본선 16강에 오르는 데 이바지했다. 그해 동아시안컵 일본전 프리킥 결승골도 전가을 축구 인생 명장면 중 하나다.

전가을은 ‘최고의 순간’을 꼽는 말에 예상대로 두 장면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당시 골을 넣을 땐 내가 잘하고, 잘해서 넣은 걸로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이라며 다시 울먹였다. 그는 “골을 넣은 과정, 뺏고 뺏기는 과정에서 동료가 좋은 어시스트를 해줬다. 잘 주워먹었다. 프리킥도 내가 넣었지만 (그 상황이) 이어지도록 (동료가) 만들어줬다. (내게) 차라고 기회를 준 선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여자 대표팀 뿐 아니라 남자 대표팀에도 커다란 울림이 될 얘기다. 최근 남자 대표팀은 아시안컵 기간 내분 사실이 알려졌다가 홍역을 치른 적이 있다. 당사자간의 화해로 분위기를 바꿨지만 과거보다 결속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런 가운데 전가을은 ‘11명이 하나가 돼서 하는 축구’를 강조, 득점을 하기까지 모든 과정에 관여한 동료를 먼저 치켜세웠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고맙더라. 부끄럽고 늦었지만 고마웠다고 얘기하고 싶다”고 눈물을 흘렸다.

전가을은 경기 전 오랜 대표팀 생활을 함께한 골키퍼 김정미, 조소현, 지소연 등과 담소를 나눴다. 그는 “함께 고생한 선수들이 ‘축하한다’고 하더라. ‘너희도 곧 할 거야, 준비하라’고 했다”고 웃으며 “오랜만에 경기장에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옷만 갈아입고 들어가면 될 것 같더라”고 했다.

은퇴식 때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가 눈물을 쏟은 것엔 “(KFA에서) 영상을 너무 멋있게 만들어주셨다. 글귀를 보는 데 (선수 시절이) 스치듯 지나가더라. ‘나 좀 많이 했군가, 열심히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자기 노하우를 이르게 전수할 축구인이 되고 싶다고 밝힌 전가을은 “내가 (A매치) 골 순위 2위라는데, 후배들이 내 기록을 넘어서기를 바란다. 내가 한 노력보다 더 했으면 한다”며 여자 축구에 이바지하겠다고 다짐했다. kyi0486@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