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태형 기자] “작품 속 죽음은 중요해요. 이야기의 전환점이 되거든요. 그래서 죽음이 나쁘지 않아요. 내가 죽어야 작품이 산다면 죽어야죠.”
tvN ‘눈물의 여왕’의 홍만대 회장 역으로 ‘사망전문배우’라는 애칭이 재조명된 배우 김갑수는 극중 캐릭터의 죽음에 이같이 답했다. 김갑수는 그동안 KBS1 ‘태조 왕건’(2000), SBS ‘연개소문’(2006), tvN ‘미스터 션샤인’(2018) 등 수많은 작품에서 극 중 사망하며 중도하차했다. 총 16부작인 ‘눈물의 여왕’에서도 13회에서 숨을 거뒀다.
“원래 10회쯤 사망하는 걸로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홍회장이 계획보다 오래 살아서 언제 죽는지 물어보기도 했죠. (웃음)”
김갑수가 연기한 퀸즈 그룹 홍만대 회장은 홍해인(김지원 분)의 친조부다. 내연녀 모슬희(이미숙 분)외에는 누구도 믿지 못했지만 사망 직전 자신의 죽음이 모슬희의 계략임을 뒤늦게 깨닫는 비운의 인물이다.
“구두를 닦아 백화점 건물을 사고 그룹사 회장이 됐지만 인생이 허무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 당하고 ‘인간이란 게 이런 거구나’ 생각이 들었죠. 인생의 회한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모슬희 역의 이미숙은 KBS2 ‘신데렐라 언니’(2010)를 통해 처음 연기 호흡을 맞췄다. 당시에도 이미숙은 그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 후 외도를 저지르는 인물을 연기했고 김갑수는 9회 만에 사망했다.
“‘신데렐라 언니’ 때 이미숙 씨를 처음 만났어요. 호흡이 잘 맞더라고요. 늘 배신하는 역할만 하는지 모르겠어요.(웃음) 그때도 내가 죽었네요. 죽는 연기를 참 많이 했어요.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 호흡이 어디 갈까요. 그런 역할은 이미숙 씨 외에는 할 사람이 없죠. 반대로 이 나이에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사람도 저밖에 없고요 (웃음).”
극중 손녀인 김지원, 손녀사위인 김수현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김갑수는 김수현에 대해 “어떤 역할을 가져와도 잘 한다. 연기를 할 줄 아는 친구다. 뭘 만들어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연기를 한다”고 극찬했다.
김지원에게는 “앞으로 엄청 발전할 것 같다. 뚫고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배우다. JTBC ‘나의 해방일지’(2022) 때도 연기를 잘했다. 어두운 작품과 밝은 작품 모두 복합적인 연기를 보여줬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김갑수는 극 중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에 접점이 많이 없었던 것을 아쉬워했다.
“홍 회장의 후계자를 누구로 설정할지 결정해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가족 중에 줄 만한 사람이 없더라고요. 남은 사람은 해인이 정도인데 아쉬웠던 건 손녀와 접점이 많이 없는 거였죠. 홍 회장이 해인이와 교감이 거의 없던 게 작품 전체에서 아쉬웠던 부분이에요. 하지만 박지은 작가가 대본을 정말 잘 썼죠. 작가는 사회성이 있고 어려운 이야기를 재밌게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갑수는 1977년 극단 현대극장 1기로 데뷔, 아버지, 재벌 회장, 정치인 등 폭넓은 인물을 두루 연기했다. 영화 ‘태백산맥’(1994)에서는 강경한 반공주의자 염상구 역, ‘태조 왕건’ 속 궁예의 책사 종간 역, MBC ‘몽땅 내 사랑’(2010)에서는 시트콤 연기까지 선보였다. 데뷔 47년차, 67세인 현재 ‘눈물의 여왕’ 을 통해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배우란 직업은) 사람들의 감성을 건드는 일이라서 절대 없어지진 않을 거라 생각해요. 그러니 잘 준비 해뒀으면 좋겠어요. 지금보다 훨씬 더 세계적인 배우들이 많이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할리우드의 알 파치노 같은 배우들이 지금도 멋있게 연기하는 걸 보면 우리나라 젊은 배우들이 60대가 됐을때 얼마나 세계를 휩쓸까요. 연기도 잘하고, 잘생긴 배우들의 앞으로를 상상하면 가슴이 벅차요.”
한 때 4작품씩 겹치기 출연을 하기도 했지만 지나치게 감정을 소모한다는 생각에 최근에는 일을 줄였다. 대신 꾸준히 1년에 한작품씩 출연하며 80대를 대표하는 배우가 되는 게 그의 바람이다.
“1년에 한 작품씩이라도 꾸준히 하고 싶어요. 역할에 대한 욕심보다 분량이 적어도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이 좋아요. 그리고 내가 안 해봤던 다른 분야, 유튜브도 도전하려 해요.” tha93@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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