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거짓말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타인의 비난이 두려워 내뱉는 수비적인 거짓말이 있는가 하면, 타인을 속여 이득을 취하려는 공격적인 거짓말이 있다. 둘 다 절대 해선 안 되지만, 굳이 따지면 후자가 더 나쁘다.

15일 개봉을 앞둔 영화 ‘그녀가 죽었다’에서 신혜선이 맡은 한소라는 매일 이기적인 목적으로 거짓말을 일삼는 인플루언서다. 자신의 삶을 포장하고 허황되게 만들어 관심을 끈 한소라는 몸값을 올렸고, 수익도 늘었다.

마음에도 없는 봉사활동을 나가거나, 소시지를 물고 비건 메뉴를 즐긴다고 말하는 건 그나마 애교수준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주려고 애꿎은 고양이의 발목을 부러뜨리고, 자신에게 불편한 존재는 죽이거나 살인자로 몰아냈다. 관심종자를 넘어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인물이다. 신혜선은 인물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이해하는 것을 포기한 채 연기에 임했다.

신혜선은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한 커피숍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렇게 비호감이 심한 배역은 처음이다. 한소라의 이중적인 느낌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며 “가증스러움을 극대화하려고 했다. 감독님이 ‘이해받게 하지 말자’고 주문했는데, 사실 조금도 이해되지 않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어떤 악역을 맡아도 그 인물을 사랑하고 신빙성을 찾는 건 배우에게 주어진 숙제다.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은 인물이 왜 이런 욕망을 갖고 나쁜 짓을 일삼는지 이유를 찾는다. 못된 행동을 집요하게 하는 인물이라면 추진력이나 뚝심을 매력 포인트로 잡곤 한다. 이 과정이 좋은 연기를 하는 동력이 된다. 한소라의 거짓된 삶 자체가 신혜선에게 흥미로 다가왔다.

“배우의 장점 중 하나가 내가 아닌 사람을 표현하는 거잖아요. 소라를 표현하는 게 재밌는 과정이긴 했어요. 굳이 따지면 저는 선한 역할을 더 많이 맡았거든요. 그런데 한소라는 뭘 해도 이상한 애예요. 표정 하나 안 변하고 나쁜 짓을 해요. 그래서 더 끌리긴 했어요. 그렇지만 소라를 좋아할 순 없었어요.”

신예 김세휘 감독은 디렉팅 과정에서 “한소라를 동정받게 하지 말자”고 주문했다. 이와 무관하게 신혜선은 무엇하나 인간적인 것 없이 자기 욕망에만 몰두하는 한소라에게 정을 느끼지 못했다.

“특히 가증스러운 면이 너무 싫었어요. 저도 직업적으로 꾸며서 보여주긴 하는데, 한소라는 과도하고 극적으로 표현하잖아요.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못된 짓도 하고요. 자기연민도 너무 심했어요. 초반에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계속 스스로 불쌍하게 생각하니까 불편하더라고요. 감독님과 상의하면서 관객이 동정심을 느끼지 않게 연기하려고 했어요.”

신인 감독의 작품이고 장르도 스릴러다 보니 등장하는 인물의 수가 적다. 영화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는 변요한이 끌고 갔고, 후반부는 신혜선이 빛났다. 두 사람이 직접 대면하는 장면부터 영화는 급속도를 냈다. 손에 땀이 쥐는 긴박감으로 관객을 몰아붙였다.

“이런 걸 두고 호흡이 좋다고 하는 것 같아요. 요한 오빠랑은 예전에 부부 연기를 한 적이 있어요. 이번에는 얽히고설키는데 요한 오빠가 고생을 많이 했어요. 초반부를 잘 끌어줘서 후반에 소라가 잘 보일 수 있게 됐어요. 액션도 ‘개싸움’에 가까운데 시너지가 잘 난 것 같아요.”

신혜선의 요즘 행보는 다작이다. 2020년부터 올해까지 드라마와 영화를 통틀어 총 8편의 작품에서 주연을 맡았다.

“tvN ‘철인왕후’(2020) 이후 쉬지않고 작품을 계속 찍었어요. 흥행도 물론 중요한 요소라 생각해요. 몇 년 전까진 경험이 고팠어요. 드라마는 주로 로맨스가 많아서 다른 장르를 경험하기 힘들거든요. ‘그녀가 죽었다’는 스릴러고 ‘용감한 시민’(2023)은 액션, ‘타겟’(2023)은 공포예요. 도전해보고 싶은 작품은 최대한 참여했죠. 후회는 없어요.”

그 사이 스펙트럼도 넓어졌다. 유쾌하고 재밌는 인물을 그리면서도 진중하고 깊이 있거나, 한소라처럼 미스터리한 느낌도 표현했다. 연기와 매력, 흥행 면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배우 중 하나다.

“악역이나 선한 역이나 이미지에 대한 부담은 잘 안 가져요. 작품이 흥미로우면 최대한 하려고 해요. 개연성이 부족한 인물을 연기하는 건 피하려고 해요. 민폐도 끼치고, 일관성이 너무 떨어지는 인물이요. 인물의 선이 뚜렷하고 방향성이 일관된 역할을 선호하게 됐어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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