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배우 변요한과 신혜선은 신인 김세휘 감독을 ‘천재’라고 치켜세웠다. 현장을 즐길 수 있는 배짱과 모든 장면을 완벽히 숙지한 상태에서 나온 수많은 판단이 그 이유였다.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감독에게 전하는 배우의 응원에서 진심이 묻어났다.

지난 15일 개봉한 ‘그녀가 죽었다’를 보면 두 배우의 칭찬이 충분히 이해된다. 신인임에도 용감한 도전이 눈에 띈다. 비호감 캐릭터를 전면으로 내세운 점이나 내레이션으로 인물의 심리를 이입시키는 지점, 복잡하게 설계된 이야기가 절정에서 만나 긴박감을 끌어내는 것이 그 예다. 친절하진 않지만, 이해도 어렵지 않다. 재밌고 색다른 스릴러가 신인 감독 손에서 탄생했다.

실험성이 강한 작품을 매끄럽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칭찬이 자자하다. 최근 눈에 띄는 신인 감독이 없는 한국 영화계에서 단비 같은 재능이다.

김세휘 감독은 “생각보다 호평이 많아서 얼떨떨하다. 시험은 쳤는데 성적이 나오지 않은 기분이다. 며칠 슬프기도 했다. 3년 동안 임시 보호하고 있던 새끼 고양이가 주인을 만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라며 “주인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부산 출신인 김세휘 감독은 중학교 때부터 글에 대한 욕심이 남달랐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KBS 극본 공모전에 출품했다. 고등학교 때는 연극 대본을 써서 부산청소년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의 필력을 알아본 제작사 엔진필름과 계약을 맺고 처음으로 쓴 작품이 ‘그녀가 죽었다’다.

“글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어요. 몇 번 상도 받고 하면서 ‘내가 조금 쓰나?’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세 번째로 탈고했을 때 캐스팅이 됐어요. 처음엔 너무 실험적이라서 대표님이 반대했고, 대표님 스타일대로 만드니까 장점이 없는 거예요. 제 식대로 다시 써보겠다고 하고 쓴 게 반응이 좋았죠. 제가 경험도 부족하고 뭘 몰라서 실험적인 작품을 썼던 것 같아요.”

“살인사건을 발견한 사람이 신고할 수 없다면?”이란 짧은 로그 라인에서 시작했다. 비호감 캐릭터, 내레이션 등 상업영화의 문법과 어긋나는 포인트가 많다. 그런데도 이야기가 술술 읽힌다. SNS를 소재로 인간 본성을 색다르게 짚어냈다. 영화를 본 뒤 자기 합리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많은 사람이 자기 정당화를 하고 있잖아요. 특히 SNS가 자기 합리화를 더 발현되게끔 도와준 것 같아요. 스스로 더 멋있는 사람인 척하고 싶은 심리나, 타인의 삶을 훔쳐보고 싶은 심리가 그렇죠. ‘거짓말의 진화’라는 심리학 서적이 있는데, 거짓말의 시초부터 나와요. 그 책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자기 정당화는 아마 모두가 외면하고 싶은 모습일 거예요. 그 본성이 이야기에 녹으면 재밌을 것 같았어요.”

극 중 거짓말을 일삼는 한소라는 소시지를 물고, 비건 샐러드를 먹었다는 글을 올린다. 커피숍에 두고 간 타인의 명품 가방을 마치 자기 것인 양 들고 사진을 찍고 SNS에 게시한다. 그 장면을 구정태(변요한 분)가 봤다는 착각에서 사건이 시작됐다. 왠지 충분히 일어날 것 같은 장면이라 현실감이 짙다.

“제가 남의 가방을 들고 사진을 찍은 적은 없어요. 하하. 아마 한소라는 쪽팔렸을 거예요. 구정태가 비웃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 죽여야겠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남의 가방 들고 찍는 여자는 못 봤고, 남의 차 앞에서 사진 찍는 남자들을 많이 보긴 했어요. 액세서리나 반지도 생각했는데, 그런 제품은 커스텀 마이즈가 된 거기도 해서 제외했어요.”

김 감독은 오래전부터 변요한의 팬이었다. 단편 영화부터 최근 작품까지 안 본 작품이 없다. ‘토요근무’(2011)라는 단편영화를 본 뒤 그를 캐스팅하기로 마음 먹었다. 어린애가 혼자 있는 집에 들어온 케이블 설치 기사 역할을 변요한이 조금의 위화감 없이 연기해낸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음흉한 변태를 순수하게 표현해 줄 인물에 적합했다는 것이다. 신혜선은 당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연기파 배우였다.

“연기를 정말 잘하니까 좋아했던 배우예요. 저는 변요한이 안 해줄 줄 알았는데, 단숨에 한다고 연락이 왔어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죠. 신혜선은 성격도 좋고 연기 잘한다는 평가가 쫙 깔려 있었어요. 미세한 스릴러 연기까지 훌륭하게 해내는 배우죠. 두 배우가 이 영화를 사랑해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 감독을 꿈꿨지만, 정작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영화인으로서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플랜B로 기업 취업을 염두에 두고 한 결정이다. 영화적 영리함이 삶에도 녹아있는 듯했다. 이미 차기작도 준비 중이다. 장르는 판타지 사극 액션이다.

“저는 SF를 꼭 해보고 싶어요. 이전에 썼던 작품도 SF스릴러예요. 공포, 스릴러를 좋아하는데 인생 영화는 ‘타이타닉’이에요. 다음 작품은 판타지 사극 액션인데, 아직 개발 단계라서 설명은 어려워요.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 만드는 것에 욕심이 있었어요. 계속 기회를 얻어서 꾸준히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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