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만 해도 제2의 ‘오징어게임’인 줄 알았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에이트 쇼(THE 8 SHOW)’가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성기훈(이정재 분)의 눈으로 게임 시스템의 문제점을 짚는 ‘오징어게임’(2021)은 남을 죽여야 내가 사는 적자생존이 메시지였다면, ‘더 에이트 쇼’는 유튜브가 명함이 된 영상 시대에 자극을 쫓는 다수의 욕망을 짚었다.

◇‘오징어게임’과 전혀 다른 설정, 더 가혹하다

한재림 감독의 첫 시리즈물인 더 에이트 쇼’는 게임장에 오래 있을 수록, 윗층에 있을수록 돈을 많이 번다는 독특한 설정을 내세웠다.

‘1분에 1만 원, 시급 60만 원, 일급 1440만 원’, 100일이면 14억원이 주어진다. 하지만 다음날 자신에게 주어지는 금액이 가장 최저라는 걸 알게 된 당사자는 자괴감에 빠졌다. 8을 고른 누군가는 1분에 34만원, 일급 4억8960만원을 벌기 때문이다.

세상의 물가에 100배가 적용되는 세트장 안에서 층수는 계급이 된다. 시스템을 만든 자가 권력이고 그 안에서 모든 인간이 공평한 서바이벌을 벌인 ‘오징어게임’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권력을 잡은 위층의 사람들은 값비싼 무기를 사들여 아래층 사람들을 위협했다. 위정자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을 저지르는 현실과 닮았다. 이 외에도 금수저와 흙수저, “거액 앞에서 과연 이성은 존재하는가?”와 같은 질문은 씁쓸함을 던졌다.

◇부족한 서사를 메운 명배우들의 연기

‘오징어 게임’은 성기훈을 비롯한 등장 인물에 각각의 서사를 부여했다. 성기훈 외에도 주요 배우들에게 이입할 지점을 많이 넣었다. 누군가 죽음을 맞이할 때마다 시청자들은 같이 슬퍼했다.

‘더 에이트 쇼’는 인물의 서사를 최대한 배제했다. 세트장 안에 들어온 이들은 빚더미에 시달렸다는 공통점 외에는 사연을 알 수 없다. 인물에게 담긴 성향이나 성격은 모두 배우들이 채워야 했다.

서사의 부족한 틈을 배우들의 개인기로 메웠다. 인물의 서사가 빠지는 대신 연이어 터지는 사건 덕에 이야기 전개가 상당히 빨라졌다. 배우들이 효과적으로 연기한 덕에 각 캐릭터의 성향이 파악되는 시점에선 인물들의 관계도 쉽게 이해됐다. 덕분에 몰입도가 높아졌고, 지루할 틈이 없어졌다.

각종 커뮤니티에선 “단숨에 몰아봤다”는 게시글이 적잖이 보인다. 인물의 서사를 최대한 뺀 부분이 이러한 호평의 이유로 꼽힌다. 이야기를 이끄는 류준열을 비롯해 ‘돌+아이’ 8층을 연기한 천우희, 엘리트이자 기회주의자 박정민, 무시무시한 박해준, 여우짓을 일삼는 4층 역의 이열음, 차분한 인상이 더 무서운 문정희, 여전사 이주영과 마지막을 장식한 배성우까지, 빈틈이 없다.

◇영상매체 시대, ‘도파민분출’ 자극 원하는 대중 꼬집어

‘더 에이트 쇼’는 찰리 채플린 무성영화를 연상시키는 장면과 TV의 큰 화면을 오간다. 이러한 장치는 TV 뒤에서 자극적인 쇼를 관람하고, 돈을 벌도록 해주는 사람은 결국 시청자라는 걸 의미하는 복선이다.

한재림 감독은 ‘더 에이트 쇼’를 통해 영상 매체 시대의 현실을 반영했다. 게임장 안으로 들어갈 때의 붉은 커튼, 무대 속 놀이터와 수영장 등 SNS에서 자주 보이는 배경, 1층(배성우 분)이 서커스를 할 때 붙잡는 영사기, 장기자랑으로 시작해 점점 더 과격해지는 인간들의 쇼, 누군가 죽어야만 쇼가 끝나는 룰 등 모든 메타포가 한 줄기로 연결돼 있는 점으로 의도를 풀이할 수 있다.

극 중 인물들이 점점 더 자극적인 쇼를 고민하는 것처럼, 대중 역시 더 큰 자극을 찾는 것을 꼬집고 있다. 누군가 죽어야만 쇼가 끝나는 대목 역시 가혹한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이야기의 끝에는 “얼마나 더 강한 자극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자극적이고 불편하며 때론 선정적인 장면도 있지만, 새로운 것을 추구한 감독의 고민이 알록달록한 무대 미술, 배우들의 물 샐 틈 없는 연기력 등과 조화를 이룬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불공정한 선상에서 출발하는 경쟁이라는 이 ‘더 에이트 쇼’의 룰은 우리가 겪고 살아가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재미에 중독된 세상과 그 자극의 끝이 어디까지 일어나는지를 은유적으로 그린 작품”이라며 “영상 시대의 자극성을 꼬집는 한재림 감독의 연출은 톡 쏘는 맛이 있다”고 평가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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