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다워 기자] 의리, 낭만은 이제 축구판에서 사치가 됐다.
개막한 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올시즌 K리그에서 중도 하차한 감독만 벌써 5명으로 늘어났다. K리그1에서는 전북 현대의 단 페트레스쿠 감독이 짐을 쌌고, 대구FC의 최원권 전 감독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민성 감독도 대전하나시티즌 사령탑을 맡은 지 3년6개월 만에 사임했다. K리그2에서는 성남FC를 이끌던 이기형 감독에 이어 수원 삼성의 염기훈 감독이 자진 사임했다. 하나 같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압박을 받다 지휘봉을 내려놨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론과 민심은 더 냉혹해지는 분위기다. 의리나 낭만으로 감독을 지지하는 세상이 아니다. 이민성 감독은 기업구단으로 전환한 대전의 승격을 이끌었고, 지난해에는 잔류까지 이뤄냈지만 시즌 초반 부진을 이유로 서포터의 강한 압박을 받은 후 빠르게 팀을 나왔다.
레전드 대우도 없다. 염기훈 감독은 수원 서포터가 가장 사랑하는 전설적인 인물이지만, 사령탑으로 변신한 후에는 팬부터 냉정하고 엄격하게 평가했다. 그 역시 “나가”라는 외침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렇게 그는 짧은 감독 생활을 마치고 ‘빅버드’에서 퇴장했다.
K리그 팬은 갈수록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한다. 응원석 현수막은 기본이고 어느덧 유행이 된 ‘버스 막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 감독을 향해 심한 욕설을 하기도 한다.
항의 방식에 논란의 여지는 있다. 자칫 팬이 실력 행사를 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팬 조차 반대 목소리를 내는 집단행동이기도 하다. K리그 수도권 기업구단을 15년간 응원한 30대 남성 전 모 씨는 “버스 막기는 정말 하지 않는 게 맞다고 본다. 경기장 내에서 외치는 것만으로 의사 표현이 가능하지 않나. 장기간 버스를 막고 서서 항의하는 것은 폭력적으로 보인다. 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경기장이 치외법권도 아닌데 예의는 갖췄으면 좋겠다. 일부 팬이 구단이나 프로 축구 전체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든다”는 의견을 냈다.
강성 팬 행동에도 이해가 가는 대목은 있다. K리그는 갈수록 평준화되면서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강등 공포를 느끼는 팀 입장에서는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다. 2부리그의 승격 경쟁도 점점 치열해진다. ‘지옥’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다. 자칫 ‘골든 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생각은 더 강한 항의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제 비밀이 없는 시대가 됐다. 팬도 구단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알고, 축구에 관한 이해도도 높아졌다. 나름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도 있다.
여러 이유로 K리그 감독 수명은 ‘파리 목숨’으로 불릴 만큼 짧아지고 있다. 3년6개월을 이끈 이민성 감독이 ‘장수 사령탑’으로 불릴 정도다. 실제로 현재 K리그에서 3년 이상 한 팀을 맡은 지도자는 울산HD 홍명보 감독, 인천 유나이티드 조성환 감독, 부천FC1995 이영민 감독, 김포FC 고정운 감독 정도에 불과하다.
살벌한 분위기 속 감독직을 이어가는 지도자들은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공황장애에 시달리며 약을 복용하는 이도 적지 않다. ‘극한 직업’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어려운 자리다.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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