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유다연 기자] “지난해 기준 19시간마다 1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에 놓인 남성에게 살해당하거나 살해당할 위협에 빠진다.”

위 내용은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 3월 ‘2023년 분노의 게이지: 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 및 일면식 없는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 분석’의 내용 중 일부다.

또, 지난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 내 여성 살해’는 최소 138명, 살인미수 등을 포함하면 449명으로 늘어난다. 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는 남편, 연인 등이 포함된다.

출생률 0.78, 전쟁 중인 국가보다 적은 아이들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가파른 속도로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살해된다. 소리 없는 전쟁 중인 셈이다.

11일 경찰에 따르면, 20대 남성 A씨가 지난 7일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A씨는 지난달 21일 서울 광진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연인관계인 20대 여성과 흉기에 찔린 채 발견됐다. 이미 숨진 여성과 다르게 A씨는 의식만 잃은 상태였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았다.

경찰은 범행 장소에 외부 침입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A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A씨는 병원에서 퇴원 후 경찰 조사에서 숨진 여성과 ‘사귀는 사이였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그 외에 대해서는 진술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기 하남경찰서는 11일 20대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살인)로 20대 B씨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고 밝혔다.

B씨는 지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후 1㎞ 남짓 도주했지만 목격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찰 관계자는 “연인 관계라는 B씨의 진술과 다르게 지인 사이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A씨를 상대로 구체적인 범행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교제 폭력이 여성의 안전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 증가한 교제 폭력, 뾰족한 수 없어 경찰도 고심

교제 폭력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이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교제 폭력 피의자는 2021년 1만 538명에서 2022년 1만 2828명, 지난해 1만 3939명으로 증가했다.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접수된 교제 폭력 신고 건수는 2만 5967건, 검거 인원은 4395명에 달한다. 그런데 이 중 구속 비율은 1.9%다.

이는 일반 폭행·협박 범죄처럼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 조항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신고 후 보복을 두려워해 추가 조치를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현장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된다.

스토킹 처벌법이 지난 2021년 도입됐다. 경찰은 해당 신고를 접수 후 주거지 100m 이내 혹은 전기통신 접근을 막는 긴급응급조치 직권 명령과 서면 경고, 접근금지, 구금 등을 할 수 있는 1~4호의 잠정조치를 법원에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조처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찾아가는 피의자가 있다. 또, 모든 교제 범죄가 스토킹이 수반되는 것이 아니어서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도 존재한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현재까지 교제 폭력을 막기 위해 10건 등의 법률이 발의됐다. 그러나 이 모든 법이 임기 만료 폐기가 되며 이 여성들을 보호할 뾰족한 수가 없는 셈이다.

◇ 정부, 여성 안전 위협보다 임신 및 출산으로 대상화

교제 살인은 대낮의 도심에서도 벌어진다. 지난달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대치동 오피스텔 모녀 살인’, ‘강남 의대생 살인’ 등이 발생했다.

시민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온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여성들의 안전보다 0.78명이라는 출생률을 해결하기 위한 황당한 대책을 내놨다. 국책연구원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은 지난 3일 여성이 남성보다 빨리 성장하니 1년 조기 입학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중의 거센 반발이 있자 그제야 조세연 측은 개인 의견이라고 해명했다.

여기에 김용호 서울시의원이 출생률 증진을 위한 케겔 운동과 체조를 결합한 ‘국민댄조운동’을 벌이며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또, 김 의원은 “여성들이 아기 낳을 때 장점이 있다”, “출산 장려를 위해 여성들이 춤춰야 한다” 등 주장으로 논란을 증폭시켰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이미 있는 여성도 지키지 못하는 국가에서 누가 아이를 낳고 싶겠냐”, “국가 전체가 여성을 성희롱하는 느낌” 등의 반응을 남겼다. willow66@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