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자욱한 안개 속에서 연쇄 추돌사고가 일어났다. 오도가도 못하는 차량만 100대가 넘었다. 설상가상 정부에서 몰래 키운 실험용 군견까지 탈출해 사람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공항대교가 순식간에 공포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지난 12일 개봉한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이하 ‘탈출’)의 설정은 김태곤 감독의 취향이 깊게 관여됐다. 일상의 공간이 순식간에 다른 인상을 주는 공간으로 바뀌는 것에 관심이 컸다.
김 감독은 “목포에서 서울까지 20일 정도 도보 여행을 하던 중 국도에서 들개들이 쫓아왔다. 혼자 걸어가다 당한 일이라 너무 무서웠다. 그 기억이 생생했다. 편하게 걷던 공간이 순식간에 무서운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 느낌을 장르적으로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독립영화계를 집어삼킨 ‘족구왕’(2014)을 기획하고 집필했다. ‘멍청한 김혜수’를 활용한 ‘굿바이 싱글’(2016)로 충무로에 데뷔했다. 코미디가 장기지만 도전을 선택했다.
“연출자와 각본가로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죠. 재난 스릴러 영화를 꼭 하고 싶었어요. ‘탈출:프로젝트 사일런스’의 경우 처음 제목은 ‘사일런스’였죠. 사람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군견이라는 의미를 담았죠.”
첫 재난물 도전임에도 김 감독은 큰 성과를 이뤘다. 지난해 열린 제76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이후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자는 제작사, 배급사 간의 합의 뒤 김 감독은 약 4분간의 러닝타임을 잘라냈다. 짙었던 감정은 담백하게 바뀌었고, 여운은 깊게 남았다. 욕망에만 집착하는 인간을 일갈하는 메시지도 분명해졌다.
“요즘 시류에 관객들이 어떤 점을 더 선호하는지 분석했어요. 관객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감정 과잉이 있다는 의견이 있었고, 최대한 잘라냈어요. 관객을 주체자로 생각하고 더 보기 편한 영화를 만들기로 했어요.”
영화 초반 10여분 여러 인물이 소개되고 자연스럽게 공항대교로 넘어가자마자 엄청난 추돌사고가 잇따른다. 쉼없이 부딪히는 자동차 사고 장면은 스펙터클 하다. 길고 긴 세트장에서 모든 촬영이 이뤄졌다.
“자동차 사고를 모두 내기엔 세트 길이가 부족하긴 했어요. CG로 할 수 있다고 했는데, 홍경표 촬영 감독께서 실제로 때려 박자고 했어요. 리얼함이 커지고, 몰입됐죠. 이후 군견이 나타났을 땐 극단적인 분위기가 형성돼요. 개인적으론 만족하고 있어요.”
‘탈출’은 故 이선균의 유작이기도 하다. 지난해 함께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지만 1년 사이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김 감독 역시 이선균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영화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하며 작품의 수준을 높여준 그에게 고마워했다.
“선균이형은 인간적인 호감이 있었어요. 스펙트럼이 넓고 장르물이나 코미디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재난 영화를 안 했었더라고요. 캐스팅을 제안하니까 ‘내가?’라면서 놀랐어요. 중심을 굉장히 잘 잡아줬고, 구심점이 돼서 극을 이끌어줬어요. 굉장히 까다로운 배우예요. 대충 넘어가는 게 없어요. 동선이나 시선, 작은 것들을 하나씩 다 챙기더라고요. 모든 작은 행동에 이유가 있어야 하고요. 계속 아이디어를 내고 짜면서 이 영화가 만들어졌어요. 덕분에 수준이 높아졌죠.”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배우의 부재는 감독에게 부담일 수밖에 없다. 김 감독은 오히려 차분하고 편안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영화를 공개하는 입장에선 조심스럽지만 예상외로 다들 즐겁게 봐주셨고, 환호도 나왔어요. 선균이형도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더 즐겁길 바랄 것 같아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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