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예상한 결과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않고, 모기업 자금사정과 눈앞의 이익만으로 제도를 결정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가 샐러리캡을 상향 조정했다. 제도 도입 2년 만이자 최초시행 약속 시기를 무시했다.

KBO는 3일 ‘제 3차 이사에서 2025년 구단별 샐러리캡 상한액을 137억1165만원으로 결정했다. 올해 114억 2638만원보다 20% 증액했다’고 발표했다.

샐러리캡은 메이저리그식 사치세 개념으로 지난해 도입했다. 10개구단 연봉 상위 40명 평균액을 기준으로 설정해 이른바 빅마켓과 스몰마켓 구단의 전력 불균형을 상쇄하자는 취지로 도입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내수 경기가 침체했고,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물가가 걷잡을 수 없이 오르는 등 ‘현실을 고려한 선택’이라는 변명이 따랐다.

제도 도입 첫해부터 “약속한 2025년까지 샐러리캡을 유지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구단이 아닌 기업 자금 사정에 따라 지갑을 열 때와 잠글 때를 구분하는 KBO리그 9개구단(히어로즈 제외) 현실을 반영한 제도라는 이유에서였다.

KBO는 “최근 물가 인상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선수 연봉이 대폭 늘어나서 일부 구단을 중심으로 샐러리캡 상한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고 강조했다.

‘일부 구단’이 어디인지는 야구팬이라면 충분히 유추할 만하다. 프랜차이즈 스타 중 프리에이전트(FA) 권리를 얻는 선수가 많은 팀, 깜짝 우승으로 선수단 총연봉이 대폭 오른 팀 등 전력유지 차원에서 샐러리캡 상향 조정이 불가피한 구단이 적지 않다. 비FA 다년계약 등을 고려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샐러리캡에 포함되므로 실질적인 답은 아니다.

KBO 이사회의 ‘특기’인 ‘구단 이기주의’가 몇 가지 특수성과 결합해 쉽고 가볍게 제도를 바꾸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트레이드 마감시간(7월31일)이 불과 사흘전이고, 단 한 건의 ‘빅딜’도 발생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육성을 통한 자연스러운 세대교체가 아닌 ‘집토끼 지키기’에 온신경을 집중한다는 게 드러난 제도 개선으로 볼 수 있다.

도입 때부터 논란이 된 샐러리캡 용어도 ‘경쟁균형세’로 바꾸기로 했다. 샐러리캡을 초과하면 제재금을 부여하는데, 이 역시 야구발전기금으로 통합했다. 절세와 탈세, 감세 등이 ‘대기업의 의무’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경쟁균형세’라고 마치 세금처럼 내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한 건 아이러니다.

제도 시행 기한을 명시하지 않은 건,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경기 등락에 따라 언제든 축소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것처럼 읽힌다. 적어도 돈에 관해서는 스포츠의 가치를 무시하는 KBO 이사회 태도가 프로야구 출범 40년 동안 단 한 걸음도 진보하지 않은 셈이다.

선심성 증액도 눈길을 끈다. 트레이드 때 선수에게 지급하는 이사비를 200만원으로 인상했다. 올해까지는 양구단이 50만원씩 부담해 100만원을 지원했다. 100% 인상한 셈이다.

1군 등록시 5000만원 이던 최소연봉도 6500만원으로 인상했다. 샐러리캡을 인상했으니 저연봉 선수 복지도 신경쓴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술책으로 풀이된다.

더 많은 돈을 주니, 더 길게 활용하겠다는 의도도 드러냈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주도해 ‘비활동기간 단체 훈련 금지’ 기조를 유지했는데, 1월 마지막 주부터 훈련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꿨다.

각팀 마무리 훈련이 11월 마지막 주에 끝나, 사실상 비활동기간은 일주일 먼저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12월1일부터 1월31일이라는 명시적 기간이 실질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해외 전지훈련이 대세로 자리잡은 이래 1월29일이나 30일 출국하는 팀이 늘었다. 일부 고액연봉자는 1월 중순부터 ‘개인훈련’ 명목으로 일찌감치 해외로 떠났는데, 대부분 구단이 조기 훈련을 떠나는 선수들의 항공권료는 지급했다.

때문에 내년부터는 11월24일부터 1월24일까지 일주일가량 비활동기간을 앞당겼다. 이런 논리라면, 1월 15일께 ‘조기훈련’을 명목으로 전지훈련지로 먼저 떠나는 선수들이 늘 수도 있다. 2월1일부터 청백전 등 실전을 치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인데, 비활동기간 조정으로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KBO는 단서조항은 “구단 결정에 따라 7일 이내에서는 시작일과 종료일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고 여지를 남겼다.

스포츠팬 시선이 올림픽에 쏠려있을 때 작지 않은 사안을 결정해 기습발표한 ‘타이밍’ 역시 순수한 의도로 비치지는 않는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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