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예고편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조정석의 느닷없는 여장에 폭발적인 웃음이 예상됐다. 베일을 벗은 영화 ‘파일럿’은 기대를 뛰어넘었다. 개봉 후 4일 만에 100만을 돌파했고, 200만 고지도 코 앞이다.

‘파일럿’은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2019)로 호평받은 김한결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조정석의 원맨코믹쇼에 젠더 이슈와 주인공의 성장기가 적절히 담겼다. 단순히 주인공만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물이 각각의 색을 입고 자기 자리에 우뚝 서 빛을 내고 있다. 세련되면서 노련한 맛이 작품에서 전달된다.

영화는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스타 파일럿 한정우(조정석 분)가 취업을 위해 여장을 한 뒤 동생의 이름으로 새로운 항공사에 취직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코미디 영화의 미덕은 얼마나 웃기느냐다. 김 감독도 코미디 농도를 늘 고심했다.

“제일 중요한 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재밌어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웃지 않으면, 관객들도 웃지 않을 것 같았어요. 현장에서 정말 많이 웃었어요. 제가 원래 그렇게 잘 안 웃는 사람은 아닌데 좋은 배우들을 만나 예상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 같아요. 너무 웃으면 우는데 현장에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코미디 영화임에도 과감히 젠더 이슈를 꺼내 들었다. 남녀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요즘, 굳이 젠더갈등을 소재화한건 용감한 도전에 가깝다. 흔한 러브라인은 없고, 여성의 연대와 남성의 성장이 자연스럽게 담겼다. 어려운 소재임에도 비교적 갈무리를 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러브라인이 아닌 다른 방향성을 가져가고 싶었어요. 사랑 이야기보다는 우정 이야기로 풀어가는 것이 현시대에 더 잘 맞을 것 같았죠. ‘혹시 관객들에게 잘못 전달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있기도 했어요. 남녀 간의 갈등을 조장하고자 하는 마음은 절대 없었거든요. 건강하고 맛있는 코미디 영화를 만들려고 소통했어요.”

코미디는 배우 의존도가 높은 장르다. 아무리 연출자가 디렉션을 정확하게 줘도 코미디 감이 있는 배우와 없는 배우 간의 디테일은 큰 차이가 난다.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의 호흡과 느낌이 신을 좌지우지한다. 그런 점에서 조정석은 ‘파일럿’의 선장이자 구세주였다.

“SBS ‘질투의 화신’(2016) 때 이미 빠졌어요. 자기 몸을 자유자재로 잘 쓰는 배우예요. 대사뿐만 아니라 대사 사이 추임새나 표정, 모든 제스처를 총동원해 공백을 만들지 않는 게 영리하고 재치 넘쳤어요. 아이디어도 많고, 감정도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훌륭한 배우예요.”

비단 조정석뿐이 아니다. 한선화와 이주명, 오민애, 신승호가 제 역할 이상을 해줬다. 좋은 배우들을 정확히 캐스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선화는 예상대로 웃겼고, 이주명은 자연스러웠어요. 신승호는 묵직했고, 오민애 선배님은 탁월했어요. 배우들이 워낙 코믹 연기를 알아 자연스러운 상황을 최대한 만들어주려고 했어요. 제가 한 건 그뿐이에요. ‘파일럿’이 재밌었다면 그 공은 모두 배우 몫이에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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