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다시 골프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시간, 누군가에게는 짧은 시간이지만 내게는 길게 느껴졌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인생에 대한 고민도, 철학적인 생각도 많이했다. 인생 새옹지마라는 부모님 말씀을 새기고, 복귀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다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매 순간 감사하면서, 골프 발전에 도움이 되는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다.”

큰잘못을 하고도 이렇게 사랑받는 스포츠 선수가 또 있었나 싶다. 플레이어 스스로의 양심이 곧 심판인 골프에서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많은 사람이 정성을 모아 필드에 다시 세웠다. 복귀한지 4개월, 15번째 대회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려 성원에 보답한 윤이나(21·하이트진로) 얘기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하반기 개막전 챔피언으로 ‘윤이나 시대’를 선언한 그는 “10㎝도 안되는 우승 퍼트를 하는 순간, 여러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복귀라는 가장 큰 선물을 받았으므로 우승이라는 목표를 세우지 않아서 더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동료들이 뿌려주는 물을 맞는데, 축하 의미인 것 같아서 진심으로 고마웠다”고 말했다. 단어 하나, 말 한마디에 그간 마음고생이 투영됐다.

돌아온 윤이나는 시즌 초반에는 필드 적응을, 이후에는 실전감각 끌어올리기에 열중했다. 물론 자신을 바라보는 편견과도 싸워야 해 실력으로 스스로를 증명해야만 하는 벼랑 끝에 섰다. “내 잘못으로 상처받은 모든 분께 사죄하는 마음으로 정직하고 올바른 골프 선수가 되겠다”고 매일 사과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성적을 끌어올리려면 체력과 기술이 뒷받침돼야 했다. 다양한 구질을 연마하고, 코스매니지먼트에도 신경썼다. 약점으로 지목된 퍼팅 능력 향상을 위해 폭염에도 경기를 마치면 그린으로 달려갔다. 제주삼다수 마스터스(총상금 10억원) 우승은 이런 노력의 보상인 셈이다.

자숙기간 독서량을 늘렸다는 윤이나는 “책을 읽으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특히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이 (여러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는 힘이 됐다”고 돌아봤다. 그래서 25개월 만에 우승을 차지하고도 “집에 가서 떡볶이 먹고 싶다”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윤이나의 우승은 KLPGA투어 판도를 뒤흔들 만한 사건이다. 대상포인트(315점) 상금(7억3143만원) 2위로 올라선 그는 평균타수 1위(69.89타)로 올라서 타이틀 경쟁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견고하고도 큰 팬덤을 보유한 ‘스타’인데다 실력을 증명했으니 주가도 수직상승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대회가 열린 블랙스톤 제주에는 여러 매니지먼트사 고위 관계자가 윤이나를 지켜봐 눈길을 끌었다. KLPGA는 다른 프로스포츠와 달리 탬퍼링 규정이 없다. 매니지먼트도 엄연한 계약 상황인데, 시즌 중 선수나 그 가족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자기 선수’로 빼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윤이나는 “선수를 떠나 좋은 사람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른바 ‘프리에이전트(FA) 최대어’로 떠오를 수 있던 배경을 선수뿐만 아니라 가족과 주변인이 살펴볼 때가 됐다. 골프계는 덜하지만, 대중이 스포츠 스타에게 원하는 도덕적 소양은 웬만한 성직자를 능가하는 시대다. zzang@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