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대구=김동영 기자] 버티고 버텼다. 후배들을 이끌었고, 팀 승리도 일궜다. 그러나 끝내 병원으로 가야 했다. ‘캡틴의 품격’이 이런 것일까. 삼성 구자욱(31)에게 가을야구 시작은 ‘처절’ 그 자체다.

구자욱은 LG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3안타(1홈런) 3타점 3득점 1볼넷으로 펄펄 날았다. 덕분에 삼성도 이겼다.

시리즈를 앞두고 삼성 어린 선수들은 입을 모아 구자욱을 말했다. “선배님이 ‘즐겁게 하자’고 했다. ‘즐기자’고 했다. 긴장이 되기는 하는데, 그래도 평소처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젊은 선수들이 날았다. 김지찬, 김영웅, 이재현, 윤정빈 등이 공수에서 맹활약하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1승 이상으로 반가운 부분이다.

오랜만에 밟은 가을야구 무대다. 2021년 이후 3년 만. 당시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 2패로 탈락했다. 당시 뛴 선수들 가운데 이번 플레이오프에도 출전한 선수는 몇 명 되지 않는다. 야수 쪽에는 구자욱, 강민호, 김지찬, 김헌곤 정도다.

처음 겪는 포스트시즌이기에 부담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정규시즌과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실제로 ‘얼어붙어서’ 자기 플레이를 못하는 선수는 과거부터 적지 않았다.

삼성은 달랐다. 어린 선수들, 젊은 선수들이 공수에서 활약했다. 그 이면에 구자욱이 있음은 불문가지다. 일단 팀 내 최고 타자다. 해줄 때 해준다. 후배들에게 편하게, 즐겁게 하자며 기도 세워준다.

문제는 구자욱의 ‘몸’이다. 경기 전부터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다. 맹활약에도 표정이 밝지 못했다. 이를 숨겼다. 박진만 감독도 몰랐다. 트레이닝 파트에서 알았다면 당연히 감독에게 보고가 간다. 구자욱이 혼자 짊어지고 경기에 나선 셈이다.

경기는 잘 치렀다. 플레이오프 1차전 데일리 MVP에도 선정됐다. 그러나 경기 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인터뷰도 없었다. 병원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수액을 맞기 위해 구단 지정병원으로 이동했다.

투혼이고, 투지다. 팀을 이끄는 베테랑 선수이면서 주장이다.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듯하다. 중심이 되는 선수가 흔들리면 팀이 통째로 흔들릴 수 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맹타를 휘둘렀다. 그래서 더 대단하다. 박진만 감독은 “팀 분위기 메이커다. 오늘 경기 내내 표정이 안 좋더라. 아픈 것을 감춘 것 같다. 역시 팀의 리더, 주장답다고 생각했다”고 칭찬했다.

캡틴이 그야말로 처절하게 가을야구에 임하고 있다. 정작 후배들에게는 즐기라고 했다. 그래서 더 대단해 보인다. 구자욱의 플레이 자체가 팀 전체에 거대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raining99@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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