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감추지 못하는 ‘어른’…기괴한 그림·거울 속 숨은 의미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한 중산층 가정 거실에서 벌어지는 어른들의 싸움을 다룬 연극 ‘대학살의 신’에는 감춰진 비밀이 있다. 바로 4명의 인물이 감추고 있는 ‘진짜’ 본성이 소품으로 드러난다.
김태훈 연출은 1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대학살의 신’ 프레스콜에 출연 배우들과 함께 참석해 무대 소품이 가진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2017년과 2019년에 이어 올해 세 번째로 작품의 선봉장으로 나섰다.
무대는 평범한 가정의 거실로 꾸몄다. 소소하지만 섬세하게 진열돼있는 소품만으로 집주인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이중 코키리상, 목각 원주민 등은 아프리카에 관심 많다고 주장하는 ‘베로니끄’의 성격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사실 그는 똑똑한 척, 고상한 척 대마왕이다.
무엇보다 두 개의 소품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오른 벽면에 붙은 기괴한 그림과 무대 중앙에 놓인 커다란 전신 거울이다.
먼저 액자 속 그림에는 천으로 눈을 가리고 목이 거꾸로 늘어뜨린 종을 알 수 없는 조류가 그려져 있다. 거울은 멋스럽게 디자인한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괴상한 모양의 테두리에 감싸있다.
김 연출은 이 흉측한 소품들에 대해 “작품을 상징하는 소품”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문제의 그림은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이라고 밝혔다.
김 연출은 “베이컨은 중요한 상황에서 나오는 인간의 잔혹함과 잔인함을 틀어서 표현하는 화가다. 대본에도 나오는데, 작품의 상징성을 전달하기 위해 그의 그림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무대 가운데에서 중심을 잡는 거울의 형태는 그림 속 조류의 입 모양이다. 김 연출은 “입은 고통, 폭력, 절규, 신음 등을 상징하기 위해 이용했다”고 덧붙였다.
작품의 제목인 ‘대학살의 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프리카 수단의 다르푸르 지역에서 발생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분쟁에서 따왔다.
김 연출은 “학살은 인류가 존재하면서 계속해왔던 행위다. 누굴 죽이거나 해하거나, 욕심과 탐욕으로 남의 것을 뺏기 위해 다른 이들을 짓밟는 것이 학살이라면 지금 우리 주변에서도 보여진다”고 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낱낱이 고발했다. 김 연출은 “4명 모두 이기적이고, 욕망 때문에 다른 이들을 짓밟고 무시하고 깔보면서 최선을 다해 싸운다”며 “학살이라는 건 피가 난무하지 않고, 가슴과 정신에서 당하고 사는 우리의 삶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대학살의 신’은 11살 자녀들의 다툼이 부모들의 싸움으로 번지는 이야기다.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이성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속내를 감춘 가식덩어리다. 작품은 인간의 내면과 본성을 코믹하게 희화화했다. ‘베로니끄’ 역 정연은 “합법적인 어른들의 개싸움”이라고 표현했다.
공연은 내년 1월5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펼쳐진다. 평화주의자의 가면을 쓴 ‘미셸’ 역 김상경·이희준, 그의 아내 ‘베로니끄’ 역 신동미·정연이 이번 싸움으로 앞니 두 개가 부러진 아이의 부모로 출연한다. 까칠한 속물 변호사 ‘알랭’ 역 민영기·조영규, 두 얼굴을 가진 ‘아네뜨’ 역 임강희가 그 앞니를 부러뜨린 부모로 나온다. gioi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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