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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척=스포츠서울 윤소윤기자] 팀의 빛나는 영광 뒤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른다. 잔인하게도 주장의 자리가 그렇다. 승부와 관련된 모든 화살은 온전히 그들의 몫이다.
올시즌 가장 높은 곳에서 맞붙은 두 팀 리더들의 길었던 가을이 마침내 끝났다. 결과는 극명했다. 한 명은 패배의 아픔에 고개를 숙였고, 한 명은 기나긴 슬럼프를 훌훌 털고 날아올랐다. 키움의 버팀목 김상수(31), 두산의 캡틴 오재원(33)의 얘기다.
27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는 키움과 두산의 2019 KBO 리그 한국시리즈(KS) 4차전이 펼쳐졌다.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선 두 팀답게 치열한 승부가 이어졌다. 연장 10회까지 가는 팽팽한 접전 끝에 웃은 팀은 두산이다. 두산은 오재원의 2루타와 오재일의 적시타, 그리고 김재환의 안타로 11-9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시리즈 성적 4승 무패. 이보다 완벽한 마무리는 없었다.
누구보다 오재원에게 뜻깊었던 하루다. 올 정규시즌 오재원의 타율은 0.164로 제대로 된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2007년 프로 데뷔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결국, KS 1,2차전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벤치에서 팀원의 짐을 함께 나눠 가졌다. 그러나 베테랑의 힘은 큰 무대에서 발휘되는 법이다. 2차전 교체 출전한 오재원은 9회말 무사 1루 찬스에서 2루타를 뽑으며 역전 발판을 만들었고, 이는 곧 팀 승리로 이어졌다. 4차전에서도 마찬가지다. 5타수 3안타 3타점 1득점으로 데일리 최우수선수(MVP)의 영예까지 안으며 부진을 완전히 털어냈다.
우승이 확정된 직후 오재원은 “그동안 버티고 버텼다”며 “한국시리즈를 하면서 기회가 오면 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보답한 것 같아서 기쁘다”고 말했다.
키움 김상수에겐 너무도 잔인했던 KS였다. 4차전 5회초 키움의 6번째 투수로 등판한 김상수는 2사 만루 상황에서 두산 허경민에게 밀어내기 몸에 맞는 볼을 내주고 고개를 숙였다. 경기 외적으로도 버거웠다. 김상수의 탓만 할 수 없다. 앞서 키움은 송성문의 ‘막말 파문’으로 시리즈 초반부터 브레이크가 걸렸다. 논란 당일 김상수는 송성문보다 먼저 나서 “분위기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 제 탓이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명백한 송성문의 잘못임에도 자신의 탓으로 화살을 돌렸다. 어린 팀원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여론은 김상수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오히려 감싸 안았다는 비난이 줄을 지었다. 결국, 키움은 분위기를 전환하지 못했고, 이는 결국 패배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치는 내내 완벽한 경기력과 팀워크를 자랑했던 키움이다. 승패를 떠나 이렇게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키움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두산의 우승이 확정된 직후 키움 더그아웃엔 침묵이 내려앉았다. “괜찮아 잘했어!”라는 김상수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누구보다 힘든 순간이지만, 누구보다 큰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선수단 미팅 직후 만난 김상수의 눈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억누른 김상수는 “고참으로서 팀을 이끌었어야 하는데, 그거에 대한 미안함이 크다. 주장 역할을 확실하게 하지 못한 것이 패인으로 이어진 것 같다”라며 눈물을 참았다.
승부를 떠나 무거운 짐을 내내 어깨에 지고 달려온 두 팀의 리더들이다. 결과는 극명하게 갈렸지만, 주장의 무게를 버티고, 이겨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 어떤 선수보다 배로 힘들었을 이들의 가을은 결과에 상관없이 충분히 박수받을 만하다.
younw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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