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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잠실=윤세호기자] 겉보기로는 화려하면서 평탄한 길을 걸어온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프로 입단 4년차인 올해까지 매시즌 위기와 마주했고 깊게 고민했다. 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비시즌에는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며 한계를 넘어섰다. LG 사이드암 필승조 정우영(23)이 반등을 위한 새로운 카드를 펼쳐보였다.
구위만 놓고 보면 비교할 대상이 없다. 사이드암으로 한정하면 특히 그렇다. 평균 구속 150㎞대 투심 패스트볼로 타자들을 압도한다. 사이드암 최고 마구를 뿌리는 원동력은 비시즌 인내에 있다. 지난 겨울 어느 때보다 웨이트 트레이닝 비중과 식사량을 늘리며 증량에 성공했다.
결과는 찬란하게 빛났다. 정우영은 5월까지 23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57 피안타율 0.195를 기록했다. 가장 놀라운 부분은 뜬공 대비 땅볼 비율이었다. 뜬공 하나 당 무려 10.5개의 땅볼을 유도했다. 타자가 친 타구 대부분이 그라운드볼로 형성됐고 그만큼 쉽게 더블플레이를 유도했다. 투심 패스트볼 하나 만으로도 얼마든지 상대 타선을 돌려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필승조 투수는 전력분석에서 표적이 된다. 구단들은 정우영을 극복할 방법을 고심했다. 타자들은 히팅 포인트를 뒤에 두고 반대 방향으로 타구를 날리기 시작했다. 출루 후에는 큰 투구 모션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도루를 시도했다. 다음 타자가 땅볼을 쳐서 더블플레이를 당하느니 과감히 도루를 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그 결과 6월부터 7월까지 19경기에서 정우영의 기록은 완전히 달라졌다. 5월까지 피안타율 0.195가 0.275가 됐고 평균자책점은 1.57에서 3.12로 올라갔다. 뜬공 대비 땅볼 비율 또한 2.73으로 크게 떨어졌다. 더이상 투심 패스트볼의 구위만 믿고 승부할 수 없었다.
고민과 훈련 끝에 두 가지 방법을 찾았다. 첫 번째는 세컨더리 피치인 슬라이더 비율 증가, 두 번째는 투구판 위치 변화에 따른 제구 안정이다. 정우영은 지난달 29일과 30일 잠실 KT전에서 이례적으로 슬라이더를 많이 던졌다. 그러면서 홈런왕 박병호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정우영은 KT전을 돌아보며 “슬라이더에 대한 욕심은 꾸준히 갖고 있다. 훈련할 때 가장 많이 던지는 구종도 슬라이더”라면서 “KT전에서는 (유)강남이형도 슬라이더 사인을 많이 내줬다. 박병호 선배님은 몸쪽 투심을 넣고 바깥쪽에 슬라이더를 던지는 식으로 계획을 짰다. 강남이형이 덕분에 결과가 잘 나왔다”고 미소지었다.
투구판 위치 변화는 최근 이뤄졌다. 이전에도 1루 방향으로 투구판을 밟았다가 3루로 이동했는데 이번에 다시 1루로 위치에 변화를 줬다. 그 결과 지난 16일 잠실 삼성전 무사만루에서 등판해 임무를 완수했다. 정우영은 “줄어든 땅볼 비율을 회복하고 싶었다. 그리고 몸쪽 공략도 더 잘 하고 싶었다. 1루쪽을 밟게 되면 공간적으로 여유가 있다. 그래서 몸쪽 공략도 더 자신있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분석과 대응이 쉴틈없이 이뤄지는 프로 무대다. 변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신인왕을 수상했던 1년차에 정우영은 하체 운동의 중요성을 느끼고 자신 만의 루틴을 확립했다. 2년차에는 커브를 던지며 구종을 늘리려고 했지만 오히려 장점을 살리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투심과 슬라이더를 더 연마했다. 3년차에 구속이 정체되자 올해 네 번째 시즌을 앞두고 맹훈련에 임했다.
정우영은 “이것저것 변화를 많이 주고 싶어하는 성격인 것 같다. 그래서 때로는 선배님들께서 너무 자주 바꾸려 하는 것 같다는 얘기도 하신다”면서도 “이번에 과감하게 투구판 위치를 바꿨는데 과감했지만 필요했던 변화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어느덧 후배들의 롤모델이 된 정우영이다. 올해 LG에 입단한 최용하는 물론 고교무대에서 활약하는 사이드암 투수 대부분이 롤모델로 정우영을 꼽는다. 정우영처럼 광속 사이듬암 투수로 성장해 타자를 압도하는 모습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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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정우영은 “나도 그렇고 우리 세대에서는 임창용 선배님이 사이드암의 롤모델이었다. 그만큼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다. 내가 입단했을 때도 임창용 선배님은 은퇴한 후였으니까 요즘 어린 친구들은 임창용 선배님이 던지는 모습을 많이 못 봤을 것”이라며 “내가 누군가의 롤모델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가 기분이 좋다. 더불어 그냥 공만 빠른 투수가 아닌, 더 잘 하는 투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도 강하게 든다”고 다짐했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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