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공이 우측으로 가지 않으세요?”

지난달 열린 ‘2023 미즈노 브랜드데이’에서 였다. 뒤에서 지켜보던 선수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토끼눈을 뜨고 바라봤더니 “왼팔을 (제게) 살짝 보여준다는 느낌으로 서보세요”라고 한다. 알려준대로 자세를 고쳐잡고 볼을 쳤더니 드로우 구질로 날아갔다. “아마추어 골퍼들은 어드레스가 정말 중요해요. 왼어깨를 닫아둔다는 기분으로 어드레스하면, 볼이 우측으로 밀리는 푸시성 구질을 줄일 수 있어요”라며 웃는다. 처음 본 사람에게 세심하면서도 친절한 ‘원포인트 레슨’을 기꺼이했다. “올해는 꼭 우승하실 것”이라고 덕담했는데, 한 달만에 현실이 됐다.

프로 10년차 베테랑 이주미(28·골든블루)가 148번째 정규투어 대회에서 감격의 첫승에 입맞춤했다. 순하고 착한 선수는 우승할 수 없다는 속설을 뒤집는, 짜릿한 우승이다.

이주미는 16일 페럼클럽 동·서코스(파72·6652야드)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메디힐·한국일보 챔피언십(총상금 10억원) 최종라운드에서 버디 5개와 보기 1개를 바꿔 4타를 줄였다. 2타차 공동 4위로 최종라운드를 시작해 2타차 역전우승을 따낸 뒤집기 한판승이다.

전반에 1타를 줄이며 차분히 경기를 풀어간 이주미는 13번홀(파4)에서 1타를 더 줄여 공동 2위로 올라섰다. 16번홀에서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17번홀(파4)에서 2m가량 버디 퍼트를 홀컵에 떨어뜨려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마지막 홀에서 세 번째 샷을 1m 이내에 붙여 버디로 챔피언 퍼트를 완성한 뒤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10년간 벌어들인 3억7200여 만원의 절반 가량인 1억8000만원을 우승 상금으로 거머쥐었다. 2021년 대보 하우스디 오픈에서 5위에 오른 게 개인 최고 성적이었는데, 단숨에 뛰어 넘었다. 2013년 프로에 데뷔해 2015년부터 정규투어에 발을 디뎠는데, 통산 147개 대회에서 56차례 컷통과한 게 전부였을만큼 무명에 가까웠다. 무명설움에 정규투어 시드를 잃을 수 있다는 심리적 부담감을 극복하고 따낸 우승이어서 더 값지다.

지난 시즌 상금 순위 58위(1억4천546만원)에 올라 60위까지인 올해 정규 투어 출전권을 힘겹게 지킨 이주미는 이번 대회 2라운드 후 인터뷰에서 “작년 하반기에 시드 걱정이 많아 힘들었다”며 “올해는 상반기에 좋은 성적을 내서 시드 걱정 없이 경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우승으로 향후 2년간은 시드걱정 없이 마음껏 플레이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박지영(27) 박현경(23·이상 한국토지신탁) 박민지(25·NH투자증권) 등 누가 우승해도 이상할 게 없는 대세들의 추격을 뿌리쳐 자신감을 극대화할 전환점을 마련했다. 그는 “부모님도 ‘안될 것 같다’며 ‘골프 그만하고 다른 인생을 찾으라’고 하셨는데, 뭐라도 한번 해보려고 끝까지 버텨왔는데 좋은 결과를 얻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나 때문에 힘드셨을 텐데 작게나마 보답해 좋다”며 울컥한 이주미는 “이동석 코치님도 마음을 내려놓는 법을 알려주시고, 골프를 편하게 느끼게 해주신 분”이라고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KLPGA투어에서 시드를 지켰다는 것은 그래도 어느정도 기본은 한다는 것”이라며 “16번홀에서 공동선두라는 것을 확인했는데, 그때부터 너무 떨렸다”며 웃었다.

생애 첫 우승이 다가왔다는 긴장감이 엄습한 순간 이주미는 “17번홀에 어려운 홀이어서 파로 넘어가고, 18번홀에서 버디를 노리자는 생각을 했다. 운이 따라 17번홀에서 버디했다”고 돌아봤다.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끝끝내 버텨내 감격적인 우승을 따낸 이주미는 “앞으로 나를 응원해주는 팬이 더 많이 생기도록 노력하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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