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용인=장강훈기자] “스포트라이트 받고 싶었다.”

‘벤틀리 소녀’에서 ‘신데렐라’로 우뚝 선 서연정(28·요진건설)은 우승하고 싶었던 이유가 미디어센터에서 받는 스포트라이트를 경험해보고 싶어서였다며 웃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데뷔 9년 만에 첫 승을 따낸 선수로 보기 어려울 만큼 여유가 넘쳤다.

서연정은 3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써닝포인트 컨트리클럽(파72·6847야드)에서 열린 KLPGA투어 KG 레이디스 오픈(총상금 8억원)에서 14언더파 202타로 공동 선두에 오른 뒤 연장 접전 끝에 후원사 후배인 노승희(22·요진건설)를 제치고 우승했다. 260번째 대회 만에 따낸 감격의 첫 승.

그는 “정규투어 데뷔 10년 차인데, 우승은 나와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년까지 선수 생활하다가 은퇴하려고 마음먹었다. 뜻하지 않게 우승해 다시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번 우승으로 큰 고비를 넘겼으니, 2, 3승 따내는 선수가 되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강산이 한 번 바뀔 때까지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한 선수는 생애 첫 승을 따낸 뒤 오열하는 경우가 잦다. 지나온 세월도 떠오르고 희로애락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감정이 북받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름 ‘베테랑’인 서연정은 “같은 후원사 후배와 우승 경쟁을 한 탓에 감정이 미묘했다. (노)승희의 마음도 알기 때문에 마음껏 기뻐하기도 애매했다”고 말했다.

노승희 역시 데뷔 후 4년 동안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 답답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서연정이다.

그는 “3라운드에서 9언더파 한 게 동기부여가 됐다. 이 대회가 생애 첫 승이 자주 나오는 곳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혹시’하는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라며 “골프는 생각한 대로 되는 건 아니다. 오늘 하루만 잘 끝내자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6번홀에서 티 샷 실수로 더블보기를 적었을 때가 고비였는데 “캐디 오빠가 ‘아직 홀 많이 남았다’고 기운을 북돋아 줬다. 아직 선두이니까 포기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승희가 추격해왔지만, 긴장이 크게 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시나브로 스며든 경험이라는 무기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 셈이다. 그는 “15번홀에서 2m 남짓 버디 퍼트를 놓쳤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홀에서 버디 했으면 안도했을 것”이라며 “우승 못 한 선수에게는 고마운 대회에서 나도 생애 첫 승하고 스포트라이트 받아서 기분 좋다”고 말했다.

함께 살고 있는 김해림(34·삼천리)에게서 큰 영향을 받고 있다는 서연정은 “김해림 선배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성향이다. 그래서 연습도 정말 열심히 한다. 옆에서 지켜보면 게으름을 피우는 게 찔려서 나도 연습하게 된다. 정신적으로도 크게 도움받고 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데뷔 10년 만에 처음으로 연말 시상식에도 참가한다. 10연속시즌 정규투어를 소화한 선수에게 부여하는 ‘K-10’ 영예도 얻지만, 우승자로 당당히 시상식 무대에 오른다. 서연정은 “드레스 입고 한껏 뽐내는 동료들이 부러웠다”며 “(드레스 입으려면) 살부터 빼야겠다”며 좌중을 웃음바다에 빠뜨렸다.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이 큰 대회이고 상금 규모도 커서 우승하고 싶다”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낸 서연정은 “삶 자체가 긍정적이다. 가만히 있으면 ‘화났냐?’라는 얘기를 들어서, 일부러 더 많이 웃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환한 미소가 지난한 10년을 버티게 한 동력일 수도 있다. 그는 “부모님, 팬 모시고 우승 파티하러 가야 한다”며 밝은 표정으로 미디어센터를 벗어났다.

천진난만한 신데렐라가 탄생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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