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잠실=장강훈기자] 살얼음판 같던 1점 차 승부. 사령탑은 분위기 전환을 위해 대타 카드를 꺼내들었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타석에 들어선 대타는 끈질기게 커트하던 중 주심이 파울타구에 손을 맞아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을 벌었다.

한동안 시간이 흐른 뒤 경기는 재개됐고, 공 하나를 더 골라낸 대타는 풀카운트에서 날아든 9구째 속구(시속 145㎞)가 스트라이크존 하단으로 날아들자 힘껏 걷어 올렸다. 44.5도로 높게 솟아오른 타구는 103m를 비행해 우측 관중석 하단에 떨어졌다. 살얼음판 같던 점수 차를 살짝 벌리는, 천금의 아치였다.

1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전에서 SSG 김원형 감독이 꺼내든 대타는 최주환. 한때 ‘왕조의 주역’이기도 했고, 잠실에서도 20홈런을 거뜬히 때려내던 거포다. 8월 한 달 동안 2홈런 9타점 타율 0.247로 고개를 숙였던 최주환은 9월들어 이날 경기 전까지 타율 0.296로 조금씩 반등하던 터였다. 장타력이 있으니, 분위기 전환용으로 활용하기 안성맞춤인 셈이다.

최주환은 고민이 많은 표정이었다. 프리에이전트(FA)로 SSG의 부름을 받았지만 3년째인 올해도 이렇다할 활약을 못했다. 입단 직후 햄스트링을 다쳐 첫 단추를 잘못꿴 게 여파가 있나 싶을 정도. 식이요법으로 체중조절도 해보고, 타격폼을 바꿔보는 등 곡절을 겪었다. 무기한 2군행 좌절도 경험했는데, 드러난 효과는 미미했다.

타격감이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렸지만, 장타가 터지지 않았다. 8월31일 키움전에서 2루타 한 개를 때려낸 게 마지막 장타. 손맛은 8월24일 NC전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땀과 열정을 쏟아낸 잠실벌은 그에게도 분위기 전환을 부추겼다. 경기전 훈련 때 1루 더그아웃 옆에 공 몇개를 내려놓더니 우측 펜스를 향해 타격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들고치기’. 자신이 토스한 공을 때려내는 ‘자가발전 롱티’인데, 최주환은 “두산에서 가장 좋았을 때 매일 하던 훈련”이라고 설명했다.

모처럼 잠실에 왔고, 두산 선수단을 만난데다 타격에 눈을 뜨게 해준 고토 고지 코치와 추억이 떠올라서인지 나홀로 롱티를 반복했다. 한두 개 펜스 뒤에 떨어지기 시작하자 타구에 힘이 실렸다. “롱티를 하면 타격 밸런스 회복에 도움이 된다. 중심이동, 손목 쓰는 법, 타구에 힘을 전달하는 타이밍 등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고 귀띔한 최주환은 썩 만족스럽진 않지만, 나쁘지 않았다는 표정으로 훈련을 끝냈다.

그리고 맞이한 게 1-0으로 앞선 7회초 대타였다. 선두타자로 나섰으니 출루에 목적을 두는 게 맞다. 뒤에는 한유섬이 버티고 있고, 작전능력이 좋은 김성현으로 이어진다. 흐름상 출루만 해도 분위기를 바꿀 만한 상황이었다.

9구까지 가는 접전을 펼친 것도 ‘살아 나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인 대목. 마침 입맛에 맞는 낮은 속구가 살짝 밀려 날아들었다. 탄도는 말도 안되게 높았지만, 힘은 충분했다. 올해 SSG가 때려낸 네 개의 대타홈런 중 세 개를 책임진 순간. 자신의 시즌 19번째 아치로, SSG 입단 후 한 시즌 최다홈런을 경신(2021년 18개)한 날이기도 했다.

남은 경기에서 홈런 1개를 보태면, 고토 코치와 함께한 2018년 이후 5년 만에 20홈런 고지를 밟게 된다. 다이아몬드를 도는 최주환의 표정에 후련함이 묻어났다. SSG는 아직 가을을 포기하지 않았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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