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바티칸(이탈리아) = 박효실기자] 전 세계 가톨릭의 본산 로마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순례단이 등장하자 곳곳에서 “코레아”라며 순례객들이 반갑게 아는 체를 해왔다.

지난 16일(현지시간)은 240년 역사의 한국 천주교회에서 참으로 특별한 날이었다. 조선의 첫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의 성상이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성 베드로 대성당에 건립되는 감격스러운 날이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바티칸에 모였다. 염수정 추기경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이용훈 주교, 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 청주교구장 김종강 주교, 부산교구 총대리 신호철 주교를 비롯해 김대건 신부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영화 ‘탄생’의 배우 윤시윤, 안성기, 김나운 등도 참석했다. 한국과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온 공식 순례단도 함께였다.

이날 오전 10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약 400여명의 순례객과 특별 알현을 통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상 건립을 축하했다. 사도궁에서 진행된 특별 알현에서 교황은 “177년 전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께서 순교하신 날, 그리고 성 베드로 대성전 외부 벽감에 설치된 그분의 성상을 축성하는 날 여러분을 만나게 돼 참으로 기쁘다”라고 인사했다.

현재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일하고 있는 전 대전교구장 유흥식 추기경의 초대로 지난 2014년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솔뫼성지를 다녀간 바 있다.

그는 “솔뫼성지에서 위대한 성인의 치열했던 삶을 생각하니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는 예수님 말씀이 떠올랐다. 김 안드레아 성인이 소중한 씨앗이 된 여러분들 신앙의 아름다운 역사를 영적인 눈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 말씀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3시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 대성전에서 유흥식 추기경이 집전하는 성상 건립 기념미사가 봉헌됐다. 전체가 한국어로 진행된 미사에서 유 추기경은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이 되던 2021년 8월21일 바로 이곳에서 기념미사를 드렸고, 오늘 김대건 신부님 성상을 봉헌하는 미사를 드리게 됐다. 그분이 순교하신 당일, 바로 천상 탄신일을 기념하며 성상을 봉헌하는 일은 참으로 가슴이 벅차고 경이로운 일이다”라며 감격을 드러냈다. 이어 “하느님 고맙습니다. 성모님 고맙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목이 메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미사에 이어 대성전 우측 지하 묘지 입구에 마련된 성상 앞에서 제막식이 이어졌다. 흰 천에 가려져 있던 김대건 신부의 성상이 공개되자 현장에 있던 수도자들과 순례객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벅찬 감격을 만끽했다.

축복식 이후에는 사물놀이패의 흥겨운 공연이 이어졌다. 하늘 잔칫날에 어울리는 신명 나는 소리에 고요하던 성당이 축제장이 됐고, 수도자들과 순례객들이 어깨춤을 추며 웃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스케치부터 완성까지 2년여에 걸쳐 성상을 제작한 한진섭 작가는 제막식에서 성상을 올려다보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한 작가는 “김대건 신부님 성상이 놓인 자리는 200년 전부터 비어있었다고 들었다. 애초에 신부님을 위해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자리가 아닌가 싶다”라며 소감을 전했다.

gag11@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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