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연상호 감독은 최근 국내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내놓는 감독 중 한명이다. 2011년 ‘돼지의 왕’으로 데뷔한 뒤 13년간 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 웹툰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연출과 제작, 각본 등에 참여한 20편이 넘는 작품을 내놓았다.

최근에는 영화 ‘반도’(2020), tvN 드라마 ‘방법’(2020), 영화 ‘방법: 재차의’(2021), 티빙 ‘괴이’(2022),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정이’(2023)에 이어 또다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선산’까지 선보였다. 올해에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시즌2, ‘기생수: 더 그레이’ 공개가 남아있다. 4월에는 ‘계시록’ 촬영에 돌입한다.

좀비물, 오컬트 미스터리, 판타지 등 다양한 소재와 장르를 오가는 과정에서 연상호 감독은 이성을 잃은 인간을 다뤘다.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인간이 파멸로 향해가는 광기를 표현했다. ‘선산’은 가족이 매개체다. 가족 간의 관계 때문에 이성을 잃고 질주하는 군상을 담았다.

연상호 감독은 “‘선산’은 등장인물 모두가 이성적이지 못한 선택을 하는 인물로 구성됐다. 모두 가족에게 상처를 입었다. 덕분에 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의외성을 갖는다. 전개는 느리지만 충분한 긴장감을 갖고 있다”고 자신했다.

◇“아버지의 근친상간, 더러운 죄인으로 보지 않길”

‘선산’은 대학 시간강사 윤서하(김현주 분)가 오랫동안 인연을 끊은 아버지의 동생이 죽은 후 선산을 물려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골프장이 들어서기로 한 선산은 이미 수십억 단위의 가치를 갖고 있다. 소식이 전해지자 윤서하에게 파리떼가 꼬인다. 그 과정에서 남편 양재석(박성훈 분)이 살인을 당했다.

“이해 못 할 인간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종교나, 이데올로기처럼 사람을 합당하지 않게 움직이게 하는 것들이 있어요. 그중 하나가 가족이었어요. 가족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비틀어서 선대에서 흘러오는 이야기처럼 담으려고 했어요.”

드라마는 후반부 충격적인 비밀을 꺼내놓는다. 어느 날 갑자기 바람이 나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에게 얽힌 비밀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는 ‘근친상간’이 소재다. 가족이란 이름이 한 개인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파고들다 나오게 됐다.

“그 내용이 꼭 충격의 소재로만 쓰지 않았으면 했어요. 통념에서 벗어난 사람이 엄청난 사랑을 가질 때 관객이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했어요. 저는 마지막에 울컥하기도 했어요. 더러운 죄인으로 보이지 않았어요. 부정도 긍정도 아닌 모호한 감정이 들었죠. 관객은 어떨지 궁금해요.”

양재석의 죽음을 파헤치는 두 형사 최성준(박희순 분), 박상민(박병은 분)의 관계도 독특하다. 선배 최성준은 박상민의 팀에서 온갖 멸시를 당한다. 둘도 없는 친구였던 두 사람의 관계는 이상하게 꼬여있다.

“성준이 어마어마한 멸시를 견디는 건 박상민에 대한 미안함이 전부는 아니에요.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죠. 아들과 자신을 별개의 인격체로 선을 그어버리면 미안함이 없을 거예요. 성준은 올바르지 않은 방식으로 죄책감을 더는 거죠. 가족이라는 이중적이고 양면적인 면을 여러 레이어로 담았어요.”

◇“이성을 잃은 군상, 소설 ‘검은 고양이’에서 출발”

연 감독의 작품 세계는 ‘연니버스’라 불린다. 촘촘하게 짜인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매년 쏟아내 ‘스토리 마스터’로도 불린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는 감독도 3년에 한 편이면 빨리 내는 것이라는 충무로에서 연 감독은 매년 작품을 내고 있다.

“늘 사무실에만 있어요. 애 학교 보내고 나면 사무실에서 골똘히 생각해요. 솜사탕이 부푸는 것처럼 이 생각 저 생각을 계속 만지죠 그러다 뭔가 된 것 같으면 기획 회의를 해요. 아니다 싶으면 바로 포기해요. 스태프들은 제가 너무 빨리 포기를 한다고 해요. 10년 동안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그 작업을 했어요. 그래도 아이디어가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커요.”

‘연니버스’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이성적이지 않은 사람들’이다. 각종 애니메이션부터 1000만 관객객을 동원한 영화 ‘부산행’(2016), 그리고 ‘선산’까지, 평범함을 넘어 금도를 깨는 인물이 그의 작품에 녹아 있다.

“초등학생 때 봤던 소설 중 하나가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라는 작품이에요. 그 소설을 보고 났을 때 감정이 엄청나게 남아있어요. 주인공이 평소 보기 싫었던 고양이를 죽이려다 실수로 아내를 죽이고 벽에 감추죠. 고양이도 아내와 함께 넣고 벽을 발랐는데 결국 고양이 비명 때문에 경찰에게 들키고 말아요.저는 그 사람의 심리가 이해가 안 됐는데 살다 보니 그 주인공처럼 사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신기하고 재밌어서, 계속 그쪽을 탐구하는 것 같아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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