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올해에만 벌써 두 편의 영화가 나왔다. 넷플릭스 ‘황야’와 오리지널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이다. 영화 ‘습도 다소 높음’(2021) 이후 3년 만이다.

‘황야’에서는 뒤틀린 정의에 사로잡힌 과학자였다면, ‘살인자ㅇ난감’에선 스스로 청소부라 일컬으며 나쁜 놈들을 죽이고 다니는 65세 노인이다. 광기라는 공통된 감정을 바탕으로 전혀 다른 그만의 색을 입혔다. 연극판에서부터 이미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배우였던 이희준이 만개한 모양새다.

‘살인자ㅇ난감’에서 이희준이 맡은 역할은 형사였다가 은퇴 후 연쇄살인을 저지른 송촌이다. 형사 시절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겪고 뒤틀린 인생을 살았다. 천재 해커 노빈(김요한)의 지원을 받았다가 노빈이 이탕(최우식 분)을 도우면서 질투심을 느끼고 이탕에게 칼끝을 겨눈다.

이희준은 “음식물 쓰레기 같은 사람들을 처리하는 인물이다. 몸에 오물이 묻었는데 정말 깔끔한 청소부가 있다고 하니까, 질투를 느끼게 된다. 송촌과 이탕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는 노빈에게 서운한 감정도 있다”고 설명했다.

◇버스와 지하철, 익선동과 먹자골목 오가며 사람 관찰…연기 자양분 돼

배우들은 사람을 관찰하며 연기력을 쌓곤 한다. 오랜 관찰로 쌓은 데이터를, 연기할 때마다 적재적소에 활용한다. 행동에 리듬과 경쾌함이 생기고, 실제 같은 디테일도 챙길 수 있다. 이희준은 연극학도 시절부터 관찰을 즐겼다.

“돈 한 푼 없어도 관찰은 할 수 있어요. 버스 타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보는 거예요. 지하철도 타고 다니고요. 자료도 찾고. 이번에는 할아버지들을 쫓아다녔어요. 익선동 공원에 가면 할아버지들이 많이 계세요. 특별한 행동을 알아채는 거죠. 최근 ‘악연’이라는 작품을 찍는데, 30대 초반 ‘날라리’가 배역이에요. 자정에 먹자골목을 돌아다녔죠. 그러다 보면 뭔가 걸려요.”

40대 중반의 나이에 65세 노인을 연기하려니 부담이 상당했다. 부담과 불안을 이겨내는 건 고민과 노력뿐이다. 노력 끝에 옛날 사람 냄새가 자욱하면서도 잔인하고, 살인에 미쳐있는 송촌이 탄생했다. 등장하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고, 위압감이 엄청났다. 반면 20대를 연기할 땐 순수하고 선한 면모가 엿보였다. 그 대비가 강렬했다.

“사람이 큰 교통사고 한 번만 겪어도 완전히 바뀌어요. 송촌에겐 얼마나 많은 교통사고가 있었을까요. 아버지보다 더 믿는 선배 형사가 ‘살인자의 아들’이라며 꿈을 막았잖아요. 그 사람을 식물인간으로 만들었는데, 그 죄책감도 컸을 거예요. 여러 방면에서 스스로 유능감을 느끼고 싶었을 거고요. 그래서 나쁜 놈을 처단하는 살인자가 되지 않았을까요.”

이희준이 연기하는 송촌은 눈부터 다르다. 눈을 희번덕거릴 때마다 광기와 원망, 분노가 강하게 전달된다. ‘눈은 마음의 창구’라고 하는데, 이희준은 과연 얼마나 광기를 머금고 있었던 걸까.

“작품을 맡기로 하면 늘 그 인물에 젖어 들려고 하죠. 영화 ‘1987’(2017) 할 때는 기자의 눈이었대요. 이번에 아이랑 놀아주면서 사진을 찍었는데, 눈빛이 너무 이상한 거예요. 제가 아는 제 눈빛이 아니에요. 물드는구나 싶었죠.”

◇귀여운 최우식과 진한 스킨 냄새 나는 손석구, 부러운 동료 연기자들

익숙한 이야기를 비틀어 색다른 맛을 낸 ‘살인자ㅇ난감’을 빛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배우들의 앙상블이다. 이탕이 끌고 가는 사이 장난감(손석구 분)이 분위기를 잡고, 송촌이 휘몰아친다.

“우식이는 공감하기 어려운 역할을 연민이 느껴질 정도로 멋있게 표현했어요. 평소에는 귀엽고 웃긴 친구예요. 석구는 목욕탕에서 맡을 수 있는 진한 남자 스킨로션 냄새가 나요. ‘저걸 어떻게 하지? 저건 그냥 호르몬인데’라면서 부러워했어요. 혼자서 석구의 연기를 따라 해 보기도 했죠. 제가 갖지 못한 걸 가진 배우들을 보면 부러울 따름이에요.”

올해 이희준은 줄줄이 관객들과 만난다. 3년 동안 쌓인 작품이 8개 가까이 된다. 이성민과 예상 밖의 코미디를 그린 영화 ‘핸섬가이즈’, 주지훈과 함께한 디즈니+ ‘지배종’이 관객과 시청자들을 만날 채비를 마쳤다. 3월부터 연극 ‘그때도 오늘’ 무대에 오르며 단편영화 연출도 시작한다. 방송가와 영화계 보릿고개에도 일이 넘친다.

“첫 영화가 ‘부당거래’였는데 NG를 아홉 번 냈어요. 자책감이 엄청났죠. 스스로 괴롭히면서 연기하는 스타일이었어요. 심리적으로 더 위축되기도 했고요. 다른 의미로 욕심내봤자 안 되는 건 안 되더라고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마음으로 하니까 마음이 편해졌어요. 일도 더 찾게 되고요. 호르몬이 나이에 맞게 변해가는 것 같아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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