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제주=김용일 기자] “인상 쓰면 뭐 하냐, 웃어보자고 했다. 웃을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괜히 당구 여왕이 아니다. 벼랑 끝에 몰렸던 김가영(하나카드)은 마법 같은 뒷심으로 발휘, ‘퀸’가영으로 시즌을 마쳤다.

그는 17일 제주 한라체육관에서 끝난 2023~2024시즌 ‘SK렌터카 제주특별자치도 LPBA 월드 챔피언십’ 결승에서 김보미(NH농협카드)와 풀세트 접전 끝에 4-3(11-9 10-11 3-11 5-11 11-10 11-2 11-3)으로 이겼다. 세트 스코어 1-3으로 뒤지며 패색이 짙었지만 내리 5~7세트를 따내는 괴력을 뽐내며 우승했다. LPBA 통산 7번째 우승으로 스롱 피아비(캄보디아)와 최다승 공동 1위에 올랐다. ‘왕중왕전 격’인 월드 챔피언십(월챔)에서 정상에 오른 건 2021~2022시즌 이후 두 번째다. 또 우승 상금 7000만 원을 받은 김가영은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누적 상금 3억(3억4090만 원)을 돌파했다.

4시즌 연속으로 월챔 결승에 오른 베테랑 김가영은 우승 트로피를 앞에 두고 커리어에서 가장 어려운 승부를 펼쳤다. 5세트까지 그답지 않게 평균 0점대 에버리지에 그쳤다.

우승 직후 김가영은 “솔직히 (세트 스코어) 4-1로 지는 줄 알았다. 되는 게 하나도 없더라. 역시 우승은 하늘이 정해주는 건가 싶었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왜 그가 여자 당구 대표 스타인지 느끼게 했다.

데뷔 4년 9개월 만에 첫 우승에 도전한 김보미는 5세트에 난구를 풀며 챔피언 포인트를 만들었지만 커다란 압박감에 시달리며 지속해서 공타가 속출, 김가영에게 역전을 허용했다. 김가영은 ‘기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6세트에 하이런 10점 장타를 폭발, 김보미를 11-2로 크게 돌려세웠다. 에버리지 3.667 고감도 샷으로 반전했다. 파이널 세트로 승부를 끌고 간 그는 7세트에 ‘결승 경험’을 녹이면서 기어코 대역전극을 만들어냈다.

어느 때보다 지친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김가영. 가감 없는 말에서 왜 그가 챔피언인지 느끼게 했다. “포기하면 쪽 팔리니까”라고 당차게 말한 그는 경기가 풀리지 않았을 때 계속 미소 지은 것과 관련한 질문에 “웃어라도 본 것이다. 릴렉스하게 (공을)치지 않을까 해서”라고 말했다. 최악의 순간 자신에게 던진 ‘긍정 주문’이 결과적으로 통한 셈이다.

김가영은 “제주 날씨가 좋았다가 오늘 비가 내리지 않았느냐. 습도 등 (변수로) 테이블 컨디션을 계속 모르겠더라”며 “망망대해에 나 혼자 돛단배 띄워놓고 노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노를 안저을 수 없지 않느냐. 어느 방향이든 저으려고 했다”고 힘줘 말했다.

앞으로 바람도 남다르다. “포켓볼 칠 때부터 트로피를 몇 개 더 가져야지라는 생각은 뗀 거 같다. 내가 갖고 싶다고 갖는 게 아니다. 못 얻어도 열심히 안 할 게 아니기 때문”이라며 “내 수준이 올라가고 치고 싶은 만큼 만족을 느끼려고 노력한다. 그게 더 만족스럽다”고 했다. 실력과 강한 멘탈. 최정상급 선수가 품는 공통 요소는 김가영에게도 마찬가지였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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