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JTBC ‘닥터슬럼프’의 첫 화 남하늘(박신혜 분)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몰아치는 업무와 상사의 날 선 비난과 가스라이팅에 남하늘은 괴로워했다. 박신혜는 남하늘에게 쌓인 정신적 괴로움을 얼굴에 그대로 담은 채 ‘닥터슬럼프’ 촬영에 임했다.

가장 힘들 때 원수를 만났다. 학창시절 1등 자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해 다툰 여정우(박형식 분)와 재회했다. 서로에게 곱지 않은 마음을 가진 어린 시절의 두 사람은 끊임없이 으르렁댔다. 하지만 세월이 흘렀고, 인생의 막다른 길에 다달은 두사람은 성숙해진 서로를 발견했다.

가장 힘겨운 순간, 만났기에 서로의 결핍과 공허함을 이해했다. 의대 졸업 후 종합병원에서 근무한 남하늘은 상사와 지속적인 불화로 괴로워했고, 유튜브를 통해 성형외과 인기 의사가 된 여정우는 누군가의 모략으로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상대의 등을 토닥였다.

‘닥터 슬럼프’는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대인이 번아웃과 불안, 우울증을 겪다 사랑으로 극복하는 과정을 다뤘다. 박신혜와 박형식은 치열한 경쟁과 곳곳에 깔린 위험과 맞부딪히는 사이 건강했던 정신이 점차 붕괴되는 현대인의 모습을 자연스러우면서도 유쾌하게 그렸다. 드라마 팬들은 둘을 ‘우늘 커플’로 부르며 애정했다.

출산 후 복귀작으로 ‘닥터슬럼프’를 택한 박신혜는 변함없는 빼어난 연기력은 물론 깊이있는 연기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었다. 병원에 재직할 때는 몸도 마음도 무너진 얼굴이 가득하다가도, 정우와 학창시절의 즐거움을 떠올리며 유쾌함을 적절하게 돌려놓는 장기가 일품이었다. 평소 청량하고 밝은 이미지였던 박신혜의 매력이 ‘닥터 슬럼프’에서 고스란히 발현됐다.

남하늘은 강인함과 순수함이 교차하는 인물이다. 바다 한 번 다녀오지 못하고 일만 하다, 좋아하는 노래라고 부른 것이 학창 시절 배운 동요다. 워낙 열심히 산 덕에 악바리 같은 면이 있음에도, 그 강한 면모를 뚫고 들어가면 아이처럼 맑은 내면이 자리하고 있었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수와 소통하는 박신혜의 얼굴은 남하늘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는 교복을 입은 10대부터 사회초년병이었던 20대를 지나 30대의 단단함까지 폭넓은 이미지를 그렸다. 10대부터 30대까지 10년을 넘는 기간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박신혜는 안정된 연기력으로 어려운 문제를 풀어냈다. 박신혜가 가진 밝고 유쾌한 면모가 잔뜩 드러났다.

힘들어하는 중에 누군가 “잘못 산 것 같다”고 하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위로해주는 장면은 뭉클함도 줬다. 마치 그 대상이 캐릭터가 아닌 시청자인 듯 위안이 됐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퇴근 후 잠이 들 때까지 마치 전쟁 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낭만은 사치에 가까워지는 가운데, 박신혜가 펼쳐낸 미소와 감동, 치유, 응원은 커다란 위로로 다가왔다.

고착화된 불안에 허덕였던 남하늘은 여정우와 진심이 담긴 마음을 나눈 후 점차 나아졌다. 마지막화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승준 분)가 치료를 종료해도 된다고 판단했다. 더 이상 치료 없이도 상처를 극복할 수 있다고 진단해서다.

“그 밤 나와 같이 울어주던 사람과 함께 아픔을 견디고 함께 두려움을 다스리며 다친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다”는 남하늘의 얼굴에선 첫 화와는 달리 어느덧 단단해진 마음이 엿보였다. 괴로움과 불안으로 시작해 유쾌함과 청량함을 거쳐 성숙함으로 마무리한 남하늘의 여정은 잔상이 깊게 남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닥터 슬럼프’는 로맨틱 코미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주연배우들이 다양한 심리를 표현해야 한다. 학창시절부터 30대를 비롯해서 불안부터 성숙함까지 연기적으로 폭이 넓다”라며 “박신혜가 가진 특유의 밝음이 있다. 작품이 박신혜의 매력 덕을 봤다. 복귀작으로 잘 선택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intellybeast@sportssoe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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