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잠실=김동영 기자] 곰의 탈을 쓴 여우 맞다. 두산 양의지(37)의 노련미가 돋보인다. 여전히 리그 최고의 타자로 꼽히는 이유가 있다.

양의지는 올시즌 타율 0.344, 11홈런 68타점을 기록 중이다. OPS(출루율+장타율)도 0.895로 좋다. 득점권 타율이 0.465에 달한다. 매 경기 포수로 나서지는 못한다. 대신 타석에서는 꾸준함이 돋보인다.

3일 롯데전에서는 기록도 세웠다. 3회말 투런포를 때리며 11시즌 연속 10홈런을 달성했다. 역대 포수 4호다. 8회말에는 쐐기를 박는 그랜드슬램을 쐈다.

이 만루 홈런 상황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팀이 0-6으로 뒤지다 9-8로 앞선 상황. 역전까지는 좋은데 안심이 안 됐다. 롯데 방망이도 뜨거웠다. 격차를 벌릴 필요가 있었다.

양의지에게 무사 만루 기회가 찾아왔다. 마운드에는 박진. 초구 슬라이더가 들어왔고, 파울이 됐다. 2구를 기다렸다. 바깥쪽 속구가 들어왔다. 배트를 돌렸다. 타구는 훨훨 날아 우측 담장을 넘었다. 밀어서 만든 대포다.

자신의 통산 9번째 만루 홈런이다. 앞서 5회 양석환의 그랜드슬램도 터졌다. 잠실구장에서 한 경기 만루포 두 방은 역대 최초다.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초구 이후 2구째 구종도, 코스도 예상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박진은 등판 후 첫 타자 라모스를 상대로 6개 던졌는데 5개가 속구였다. 양의지가 어느 정도 ‘견적’을 낸 셈이다.

‘담백하게’ 접근했다. 경기 후 ‘바깥쪽 속구를 노렸는지’ 물었다. 양의지는 “특별한 노림수는 없었다”고 했다. 대신 “득점권에는 중심에 맞혀도 희생플라이가 된다. 그것에만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특별히 홈런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타구를 외야로만 보내도 한 점을 낼 수 있다. 9-8에서 10-8만 돼도 한층 수월해진다. 뒤에 4안타 5타점을 이미 만든 양석환이 있기에 찬스를 이어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

타자로서 자연스러운 생각이고, 결정이다. 그러나 양의지이기에 또 남다르다. 포수로도 리그 최고로 꼽힌다. 상대 투·포수의 배합도 충분히 체크할 수 있다.

초구 파울이 되면서 스트라이크를 하나 먹었지만, 바로 2구째 거침없이 배트가 나갔다. 병살 걱정보다, 자기 스윙에 집중했다. 목적은 ‘띄워서’ 1타점. 결과는 ‘초대박’이다.

양의지는 이승엽 감독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다. 그만큼 능력도, 팀 내 비중도 절대적이다. 이날 멀티포로 다시 증명했다. 양의지는 양의지다. raining99@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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