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글·사진 영주 = 이주상 기자] “부처님을 뵙고 여기에 앉으니, 세상의 모든 번뇌가 사라지네요.”

한 여행객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부석사(浮石寺) 정문의 턱에 앉아 있다. 독차지라도 한 듯 떠날 줄 모른다.

경북 영주시에 있는 부석사는 한국의 사찰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 전통 건축의 표본인 사찰의 내부는 물론 바다처럼 드넓게 펼쳐진 소백산 자락의 숲의 물결은 부석사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철과 나무가 아닌 진흙으로 빚어 그 위에 금을 입힌 국보 45호 소조여래좌상.

진흙과 금은 불자가 만들어 내는 정성의 순결함이고 끝없이 펼쳐진 숲은 수만 년간 변함없이 이어져 온 자연의 너그러움이다. 이렇듯 여행객의 고백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이곳이 부석사이기 때문이다.

건축가들에게 한국 전통 건축의 특성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사찰을 말하라면 부석사를 첫손가락에 꼽는다. 전통 건축에서 느낄 수 있는 멋과 맛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신라시대에 부석사라는 이름이 지어졌지만,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고려 중기에 완성됐다.

백두산에서 시작한 산줄기가 태백산에서 멈추고 방향을 바꾸어 서남쪽으로 비스듬히 달려 이룬 것이 소백산맥이다. 태백산에서 뻗은 줄기가 구룡산, 옥석산, 선달산으로 솟구치다가 소백산으로 이어져 형제봉, 국망봉, 비로봉, 연화봉을 이루었다. 부석사가 위치한 봉황산은 선달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뻗은 줄기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문수산, 남쪽으로는 학가산의 맥이 휘어들고 서쪽으로 소백산맥이 휘어 돌아 거대한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위치하여 산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봉황산을 향하여 읍하고 있는 형상이다. 풍수지리상으로도 뛰어난 길지에 속한다.

신라 문무왕 16년(서기 676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종찰 부석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국보 5점, 보물 6점, 도유형문화유산 2점 등 많은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10대 사찰 중 하나다.

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본찰로 초조인 의상 이래 그 전법 제자들에 의해 지켜져 온 중요한 사찰이다. 의상은 676년 부석사에 자리 잡은 뒤 입적할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았고 그의 법을 이은 법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석사 원융국사비에는 지엄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은 의상이 다시 제자들에게 전법하여 원융국사에까지 이른 것과 원융국사가 법손이 된 뒤 부석사에 자리 잡았다는 사실 등이 밝혀져 있다.

무량수전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 부른 데서 부석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경내에는 신라유물인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17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20호), 삼층석탑(보물 제249호), 당간지주(보물 제255호) 등이 있고, 고려시대 유물인 무량수전(국보 제18호), 조사당(국보 제19호),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 조사당벽화(국보 제46호), 고려각판(보물 제735호), 원융국사비(도유형문화재 제127호), 삼층석탑(도유형문화재 제130호) 등이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본전으로 신라 형식으로 보이는 석기단 위에 초석을 다듬어 놓고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배치하였다. 조사당벽화는 목조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유물전시관에 보관되어 있다. 1500년 동안 정성으로 빚어낸 것이 부석사다.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 도시의 탁한 공기에 몸과 마음이 찌들 때 부석사를 찾으면 ‘정화(淨化)’라는 단어를 만나게 될 것이다. rainbow@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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