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잠실=윤세호 기자] 약 7개월 전이었다. 스프링캠프를 눈앞에 두고 구단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마라톤을 준비하는 시작점에서 사령탑 계약 해지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1월말 감독 없이 스프링캠프 장소인 호주행 비행기에 탑승한 KIA다.
프런트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늦어도 캠프 중반까지는 새 감독을 결정해야 한다. 프런트를 지휘하는 심재학 단장은 불철주야 움직였다. 감독 후보군 리스트를 작성한 후 자문을 구했다. 팀장급 직원과 터놓고 대화하며 후보군을 좁혔다. 일주일 동안 회의를 반복한 끝에 구단 내부에서 답을 찾기로 했다.
그러면서 가속이 붙었다. 구단 직원 모두 내부 적임자로 이범호 타격 코치를 꼽았다. 13년 동안 이 코치가 KIA에서 보여준 모습이 감독으로 적합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당시 심 단장은 “내부에서 감독을 선임하기로 결정한 뒤에는 순조롭게 답을 찾았다. 너무 빨리 지휘봉을 잡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모두 이범호 코치를 선택했다. 사실상 만장일치였다”고 밝혔다.
7개월 후 KIA 구단의 선택은 해피엔딩으로 향한다. 17일 기준 KIA는 시즌 전적 67승46패2무. 2위와 5.5경기 차이 1위다. 정규 시즌 종료까지 29경기를 남긴 시점에서 우승 8부 능선을 넘었다. 2017년 이후 7년 만에 페넌트레이스 1위가 보인다.
이 감독의 냉철한 형님 리더십이 팀 전체에 스며든 결과다. 2위팀과 맞대결 과정과 결과가 그렇다. 포스트시즌급으로 주목받는 1·2위 대결에서 이 감독은 어느 때보다 냉정하게 경기를 운영했다. 프랜차이즈 최고 투수가 승리 요건을 충족하고 있음에도 5회에 교체했다. 1점차로 끌려가고 있음에도 한 박자 빠르게 불펜을 가동했다. 전자는 지난달 17일 광주 삼성전. 후자는 지난 16일 잠실 LG전이었다.
7월17일 광주 삼성전에서 이 감독은 양현종을 5회에 교체했다. 9-5 4점차로 앞섰고 선발승까지 아웃카운트 한 개 남은 양현종을 마운드에서 내렸다. 양현종 대신 왼손 김대유가 등판했다. 김대유는 좌타 거포 김영웅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이 감독의 선택이 적중하며 KIA는 10-5로 삼성을 꺾었다.
단순히 한 경기만 잡은 게 아니었다. 교체 당시 이 감독의 양현종 백허그 모습이 이슈였다. 그리고 이는 KIA 선두 질주에 기폭제가 됐다. 이 감독은 경기 후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던 양현종에게 다시 다가갔다. 이 자리에서 둘은 서로에게 “미안합니다”를 반복하며 갈등을 풀었다. 이렇게 선수단은 ‘팀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없음’을 되새겼다.
지난 16일 잠실 LG전은 더 과감했다. 4회까지 무실점한 선발 투수 김도현을 교체했다. 4회부터 김도현의 제구가 흔들린 것을 파악해 빠르게 움직였다. 5회말 1사 1루에서 김도현을 내리고 김기훈을 올렸다.
다음날 이 감독은 “김도현은 투구수만 봤을 때 충분히 5이닝을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경기의 중요성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점수를 더 내주면 추격하기 힘들다고 봤다”고 밝혔다. 이 감독의 결단은 이번에도 적중했다. KIA는 6회까지 0-2로 끌려갔음에도 필승조를 가동했다. 결국 9회 장타의 힘을 앞세워 대역전극을 완성했다.
이른바 ‘형님 리더십’에 갇히면 반쪽짜리가 된다. 과거 고참 선수나 코치 시절처럼 선수들에게 한없이 따뜻하고 관대하면 자충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선수 입장만 생각하다가 팀 전체가 흔들리기 쉽다.
이 감독은 냉철함과 따뜻함을 두루 펼친다. 경기 중에는 한없이 냉정한데 경기 후에는 예전처럼 형님으로 선수들을 맞이한다. 이 감독은 “큰 관심을 받는 만원 관중 경기에서 김도현이 150㎞가 넘는 공을 던졌다. 앞으로 더 큰 선수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며 김도현을 격려했다.
감독은 전투와 전쟁에서 두루 승리해야 한다. 더불어 외부의 적과 싸우기에 앞서 내부 불안 요소도 없애야 한다. 그래서 어렵다. 전투에서 이겨도 전쟁에서 지면 패장이다. 적을 이겨도 팀이 불협화음에 빠지면 언젠가는 무너진다. 초보 같지 않은 초보 이 감독은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전후 모습이 다르다. 이 감독 만의 리더십과 운영법이 KIA를 정상으로 이끈다. bng7@sportsseoul.com
기사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