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이정은의 얼굴은 마치 스케치북 같다. 작가가 원하는대로, 연출가가 그리는대로 얼굴이 바뀐다. 변신의 귀재라는 수식어가 괜히 따라붙는 게 아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영화 ‘기생충’의 문광과 엄청난 아우라를 가진 넷플릭스 ‘소년심판’의 나근희, 30대 취준생을 50대의 얼굴로 표현한 JTBC ‘낮과 밤이 다른 그녀’의 임순까지, 그의 얼굴은 변화무쌍했다.

이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에서 의외의 선택을 했다. 지극히 조심스럽고 감정의 변화가 적은 파출소장 윤보민이다. 날카로운 범죄 수사관으로서의 본능을 지니고 있지만, 마치 배경 속에 숨겨진 듯 조용히 자신만의 임무를 수행한다.

연극성이 짙은 역할에서 강점을 보인 이정은이 연기해야 했을까 싶을 정도로 색이 옅은 인물이다. 선택 이유는 두 가지다. 흥미로운 답이다. 번아웃과 중년의 경찰이다.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촬영 당시 제주도에 오래 머물며 가족들과 떨어져 있으면서 번아웃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그 당시 이정은과 가장 가까운 이미지가 윤보민이었다. 손이 쉽게 갔다고 했다.

“원고를 받았을 때 일과 삶에서 번아웃이 온 상태였어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을 때였죠. 윤보민이 시골로 내려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여유를 찾는 모습이 저와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저는 작품을 선택할 때 의도적으로 이런 연결을 잘 짓는 편이에요. 그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죠”

두 번째 이유는 ‘중년의 여성 경찰’이라는 낯선 역할이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줄 것이라 여겼다. 중년의 여성 연기자가 하기 힘든 전문직이라는 점이 끌림의 이유였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면 할 수 있는 역할이 줄어드는게 현실이에요. 사무실에서 명령을 내리거나 우두머리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이 들어와요. 활동적인 역할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제 나이대 여성 형사 캐릭터가 거의 없기도 하고요. 제복 입은 모습을 통해 낯선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어요. 내가 테스트를 해봐야 어디까지 연기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지 파악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이정은의 강점이 돋보이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워낙 색이 옅은 인물이라 운신의 폭이 좁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5회 중반까지 분량이 적고, 대사도 거의 없어서 그렇게 느껴지시는 것 같아요. 작품이 너무 좋아서 선택했어요. 8화까지 보는 힘을 가지는데 일조해야겠다고 느꼈어요. 전 전면에 나서는 역할도 해봤고, 윤보민 같은 역할도 해봤어요. 둘 다 재밌는 것 같아요. 제가 원하는 건 이 좋은 이야기를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 언제나 도전하고 싶어요.”

끊임없이 도전하는 배우 이정은은 ‘천국보다 아름다운’ ‘좀비가 된 나의 딸’ ‘경주기행’ 등 수많은 차기작에서 또 다른 얼굴로 시청자들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시청자들에게 ‘이 사람의 연기는 어떤 상황이든 믿을 만하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계속해서 연기를 하고, 즐거움을 드리고 싶어요. 저 또한 이 길을 정말 재밌게 걸어왔어요. 앞으로도 재밌게 걸어가고 싶어요.” khd998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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