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40명의 요리사가 맞대고 보고 있다. 의상 색이 다르다. 한쪽은 흰색, 반대편은 검정이다. 색은 백수저와 흑수저라는 계급을 뜻한다. 백수저는 요식업계 경력이 수십 년에 해당하는 스타 셰프, 흑수저는 무명 요리사들이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 2라운드 배경이다. 80명의 흑수저 사이에서 생존한 20명과 백수저 20명이 요리 맞대결을 펼쳤다. 최대한 공정하기 위해 심사위원의 눈을 가렸다. 혹시나 백수저의 이름값에 흔들릴 수 있는 우려를 예방한 셈이다. 오직 맛으로만 승부를 겨뤘다.

◇‘쇼미더머니’의 그 방식 그대로, 무서운 탈락의 현장

심사위원은 백종원 더 본 코리아 대표와 안성재 셰프다. 골목시장에서 대중 입맛에 전문성을 지닌 백종원 대표와 미슐랭 별 세 개를 받은 레스토랑 모수의 셰프 안성재가 나섰다. 백수저나 흑수저나 모두 수긍할 수밖에 없는 심사위원단이다.

계급 전쟁이라는 부제가 들어간 만큼 매우 자극적이고 잔인한 방식이다. 엠넷 ‘쇼미더머니’를 연상케 한다. 준비한 요리를 먹어보고 그 자리에서 생존과 탈락을 결정한다. 1라운드에선 60명이 떨어져야 하는만큼 탈락자가 우수수 나왔다.

◇승자 패자 가리지 않는 존중과 예우 ‘차별화’

탈락자라도 존중으로 대한다. 안 셰프와 백 대표는 예우를 충분히 다했다. 왜 탈락하는지 이유를 분명히 설명했다. “맛있고 고생했지만, 아쉽다”는 태도다. 요리사들은 자기 요리에 실수가 없었다면 후회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그 당당한 태도에서 뭉클함이 전달됐다.

80명 사이에서 승리한 20명의 흑수저 요리사들은 백수저와 맞붙었다. 백수저는 일종의 부전승 개념이다. 공정성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싶지만, 오히려 백수저의 경험과 내공이 흑수저를 압도했다. 백수저 유명세 뒤에는 강력한 실력과 경험이 뒷받침됐다. 4회까지 7:1로 백수저가 밀어붙였다.

‘흑백요리사’가 흥미로운 건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과정에서 엿보이는 도전과 존중이다. 흑수저나 백수저나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다해 최고급 요리를 만들었다. 경력이 오래된 백수저라도 조금의 여유를 부리지 않으며, 흑수저는 사력을 다했다. 각자 처한 환경이 다른 가운데 요리를 두고 치열하게 맞붙는 대목은 대중의 눈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다.

◇N포세대에게 던지는 희망, 치열한 도전이 주는 의미

요즘 젊은 세대에서는 ‘포기’가 유행처럼 번졌다. 워낙 환경이 각박하다 보니 새로운 도전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 집 마련, 결혼은 물론 연애까지도 사치처럼 여겨진다.

‘흑백요리사’는 희망을 쏜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흑수저가 백수저를 상대하는 모습이 그렇다. 흑수저는 잃을 게 없기 때문에 더 처절하게 덤빌 수 있고, 명성과 권력을 가진 백수저는 그 도전을 품위 있게 받아들인다. 방송은 긴장감을 갖고, 요리사 각자 철학으로 더 풍성해졌다. 그 안에서 요식업은 더 많은 관심을 받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계급을 나눈 제작진의 의도가 통하고 있는 셈이다.

애써 만든 요리를 내건 요리사들이 연달아 탈락하는 순간은 잔인하지만, 그 안에서 뜨거운 열정과 희망이 엿보이는 건 ‘흑백요리사’의 차별화된 힘이다. 아직 무언가를 이루기 전인 ‘Z세대’에게 흑수저들의 치열함은 본보기가 될 법하다.

‘달걀로 바위 치기’일지언정 누구든 스스로 단단한 달걀이 되고자 연마한다면 도전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견고해진다면, 수 십년 경력의 백수저를 이긴 흑수저처럼 기적이 다가올 수도 있다. 그리고 안성재 셰프를 비롯해 대부분 백수저도 흑수저의 길을 거쳤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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