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최서윤 기자] “이것도 관행인데!” 최근 CJ CGV 등에서 개봉한 영화 ‘특별수사’ 속 김명민의 대사다. 변호사법 제34조는 변호사가 아닌 자와의 동업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변호사가 아닌 사람이 소송 업무를 보며 이득을 챙기는 상황을 흥미롭게 꼬집었다.


현실에서도 ‘관행’이라는 명분으로 불법과 편법이 자행되고 있다는 지적은 적지 않다. 특히 지난달 조영남 씨의 발언을 시작으로, 정치권까지 ‘관행’이 유행어가 되는 웃지 못 할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관행을 어느 선까지 용인해야 하는지에 대한 격론도 잇따른다.


◇ 조영남 "대작은 미술계 관행" 논란 되자 "나 스스로 믿어온 방식" 사과


가수 조영남 씨는 지난달 17일 그림 대작 의혹에 대해 “조수를 두는 것은 미술계 관행”이라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대작 의혹 뿐 아니라 열정페이 논란까지 더해지며 해당 발언은 국민적 공분을 샀다.


지난 14일 춘천지검 속초지청은 조 씨와 그의 매니저인 A씨 등 2명을 사기 혐의로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날 한국미술협회 등 11개 미술 단체는 조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조 씨는 자신의 창작 사기를 면피할 목적으로 대작이 미술계 관행이라고 호도해 대한민국 전체 미술인들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 조영남은 대작 의혹에 대해 “조수는 미술계 관행”이라고 말했다가 사과했다(사진=왕진오 기자).


이에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SNS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은 대부분 조수를 두고 있다. 조영남은 그냥 바빠서, 한때는 혁명적이었으나 이제는 70년이나 묵은 관행이 돼 버린 일상적 방식에 편승했을 뿐”이라며 “대한민국 검찰, 언론, 일부 화가들의 수준이 졸지에 그를 전위작가로 만들어 줬다”고 조 씨를 두둔했다.


파장이 커지자 조 씨는 “관행이라고 말한 것은 미술계에 누를 끼치거나 불편하게 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업기를 접하면서 나 스스로 해석하고 믿어온 방식을 뜻하는 말이었다”며 “본의 아니게 미술계에 몸담은 분들께 상처를 입히게 돼 죄송하다”고 사과했다고 연합뉴스가 20일 보도했다.


◇ 박원순, 구의역 사고 발생 10일 만에 대국민사과 "메피아 근절… 관행 몰랐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박 시장은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열흘 만인 7일 대국민사과를 했다. 그는 “기관사의 꿈을 꾸던 청년의 꿈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관행처럼 굳어진 공사 퇴직자와 신규채용자 간의 불합리한 차등보수 체계는 전면수정토록 하겠다. 특권과 관행을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기득권인 메피아(메트로+마피아)도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메피아 관행을 묻는 질문에 “자세히 몰랐다”고 답했다. 하지만 박 시장 취임 후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는 벌써 3번째다. 서울메트로의 외주 용역업체는 국가인권위원회에 메트로 퇴직자와의 임금 등 차별에 대한 진정을 냈다. 지난해에는 감사원이 스크린도어 관리감독을 지적했다.


여기에 전문성이 부족한 박 시장 측근들이 ‘낙하산 인사’로 기용됐다는 비판이 더해지면서 박 시장의 이 같은 답변은 ‘무책임한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빈축을 샀다. 지상욱 새누리당 대변인은 9일 국회 현안 브리핑에서 “특권과 관행 타파를 외치던 분이 나쁜 특권과 관행을 고집해 온 장본인이란 사실이 드러났다”고 말했고, 같은 당 오신환 의원은 “박 시장은 몰랐다는 답변으로 국민과 유가족을 아연실색케 했다”고 문제 삼았다.


또한 박진형 더불어민주당 소속 서울시의원이 20일 “서울시 감사위원회가 거짓보고를 하고 자료를 은폐해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어렵다”며 ‘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직 사의를 표명하면서 박 시장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박 의원은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감사원이 시행한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에 대한 감사 지적사항을 제출해 줄 것을 서울시 감사위원회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뿐 아니라 구의역 진상규명위 참여 당시 ‘비밀유지 서약서’를 작성했다고 폭로해 적잖은 후폭풍이 예고된다.


구의역 사고와 관련해서는 국회 청문회가 개최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라며 “구의역 사고 청문회가 열리면 첫 번째 과제는 서울메트로의 정규직·비정규직 일자리 지도 작성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8일 시민단체인 ‘자유와 진실을 위한 지식인회의’는 감사원 자료를 토대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의 책임을 물어 박 시장을 직권남용죄로 검찰에 고발했다.

▲ 서울지하철노동조합(노조)은 5월28일 발생한 구의역 사고 이후 서울시청역 안에서 외주용역의 직영화, 2인1조제, 스크린도어 광고판 철거 등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 김수민 리베이트 의혹에 국민의당 "관행"… 흠집 난 안철수의 '새정치'


‘관행’ 발언의 정점은 국민의당에서 찍었다. 김수민 의원의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수수 의혹이 ‘김수민 게이트’로 불리며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김 의원에 대한 의혹이 처음 제기된 때는 지난 9일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4·13 총선 홍보비와 관련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김 의원과 박선숙 전 사무총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선관위와 서울서부지검 등에 따르면, 총선 당시 국민의당 선거대책위원회 홍보위원장이었던 김 의원은 선거공보를 제작하는 A업체, TV광고를 대행하는 B업체와 디자인업체인 ‘브랜드호텔’ 간 허위계약서를 통해 각각 1억1000만 원과 6820만 원의 리베이트를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총선 전까지 김 의원은 브랜드호텔의 대표를 지냈다. B업체는 체크카드를 발급하는 방식으로 국민의당 선거홍보 관련 팀원에게 6000만 원을 추가로 건넨 의혹도 받았다.


김수민 의원 등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국민의당도 사건 발생 직후 이를 ‘관행’이라며, 국민의당으로 유입된 자금도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당 법률위원장인 이용주 의원은 9일 기자들의 허위계약서 관련 질문에 “업계에서는 통상적으로 제안 단계에서 여러 사람이 제안하다가 정식으로 되면 나중에 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의 리베이트 의혹 관련 진상조사단 단장인 이상돈 최고위원은 “김 의원을 기소하면 검찰은 망신을 당할 거라고 본다”고 자신한 데 이어, 허위계약서 의혹 등에 대해서는 “광고대행회사의 관행으로 다소 불찰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비례대표 7번을 받은 김 의원의 발탁 논란에 “정치 관행을 안다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다”라고 일축해 구설에 올랐다.


국민의당이 리베이트를 ‘업계 관행’이라고 하자, 관련 업체들은 반발했다. 국민의당 최초 PI(Party Identity)를 만든 이상민 브랜드앤컴퍼니 대표는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업계 관행에 벗어나는데 그 부분(업계 관행이라고 언급한)이 브랜드 업계의 공분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디자인기업협회도 16일 성명을 내고 “리베이트가 업계관행이라는 주장은 내부의 불편한 진실을 감추기 위해 디자인산업계 문제로 떠넘기는 것”이라며 국민의당의 사과를 촉구했다.


홍보전문가인 손혜원 더민주 의원은 관련 업체 성명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뒤 “앞으로 열심히 여러분들을 돕겠다”고 적었고,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5일 트위터에 “허위계약서 작성과 체크카드 제공형식의 대가지급이 업계의 관행일지 모르나 정상적 거래방식이 아님은 분명하다. 국민의당이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할 일이 아닌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새정치’를 주장해온 안철수 공동상임대표의 입지에 흠집이 났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안 대표는 10일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국민들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한 데 이어, 20일 열린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수사 결과 문제가 있을 시에는 엄정하고 단호하게 조치를 취하겠다”며 김 의원의 당적 유지 여부도 고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검찰은 오는 23일 김수민 의원을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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