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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식 전 국무총리. 사진|유한재단

[스포츠서울 조현정기자] 노태우 정부 시절 국무총리로 재직한 정원식 전 총리가 별세했다. 향년 91세.

12일 유족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신부전증으로 3개월여 전부터 투병하던 정 전 총리는 이날 오전 10시쯤 사망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황해도 출신인 정 전 총리는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1962년부터 같은 과 조교수로 교편을 잡았다.

교육학자의 길을 걷던 1988년 12월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의해 문교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장관에 임명된 뒤 학원의 조속한 안정을 위해 학원소요 사태와 교권 침해행위, 대학의 부정·비리 등에 강력히 대처하겠다는 뜻을 천명하는 한편, 교사의 노동 삼권 등은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989년 5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창립되자 노 전 대통령은 이를 불법 단체라고 선포했다. 정 전 총리는 “교원의 정치활동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 헌법정신에 비춰 인정할 수 없다”면서 전교조를 불법 단체로 규정해 관련 인사들을 해임하는 등 강경한 조치를 취했다.

문교부 장관에서 물러나 한국외대, 덕성여대 등에서 강사로 일하다 1991년 5월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됐다. 같은 해 6월3일 정 전 총리는 취임을 앞두고 한국외대에서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나오다가 학생들에게 봉변을 당했다. 장관 시절 전교조를 불법화하는 등의 조치를 한 데 앙심을 품은 운동권 학생들이 ‘전교조 탄압주범 정원식을 몰아내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계란과 밀가루를 던졌고, 정 전 총리는 황급히 학교를 빠져나갔다.

이 사건은 밀가루와 계란을 뒤집어쓴 정 전 총리의 모습으로 각인돼 학생운동권에 대한 여론이 급속히 악화하는 중대한 계기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 전 총리는 지난 2011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일을 두고 “개인적으로 당하지 않을 일을 당했다”면서 “당시 운동권 학생들의 분위기는 그런 분위기였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야권의 반발 등으로 낙마가 예상됐으나 국회는 그해 7월8일 임명동의안을 가결, 정 전 총리도 ‘서리’를 떼고 정식 총리에 취임했다.

총리 재임 중 남북기본합의서 서명이 가장 큰 업적으로 손꼽힌다. 정 전 총리는 1991년∼1992년 남북고위급회담 한국 측 수석대표로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면담하기도 했다.

1991년 12월 11일부터 이틀간 서울에서 열린 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는 ‘남북화해’와 ‘불가침’, ‘교류협력’ 등을 골자로 한 남북기본합의서 내용을 완전히 타결해 서명했다.

정 전 총리는 1992년 2월 19일∼20일 평양에서 열린 6차 회담에서 연형묵 정무원총리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체결했다.

1992년 10월 7일 총리직에서 사퇴하고 그해 말 민자당 대통령선거대책위원장에 임명돼 제14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 뒤로는 ‘종북세력 청산’ 등을 요구하는 단체의 고문으로 활동하는 등 보수 성향의 원로 교육학자들과 활동해왔다.

hjch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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