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_director_앤소니 심_Anthony SHIM

[스포츠서울 | 부산=조은별기자]

미국 자본으로 한국인 이민자를 다룬 영화 ‘미나리’, 일본 감독이 연출한 한국 영화 ‘브로커’에 이어 또다시 이방인의 시각과 자본으로 만든 영화들이 제 27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다. 싱가포르 감독이 연출한 한국-싱가포르 합작 영화 ‘아줌마’와 재캐나다 교포 앤서니 심 감독의 ‘라이스 보이 슬립스’가 그 주인공이다. 두 작품 모두 외국인 감독이 연출하거나 해외 자본으로 한국인 이민자의 생활을 그렸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초등학교 점심시간, 형형색색의 김밥이 도시락 안에서 자태를 드러내자 친구들이 “이게 뭐냐”고 놀리기 시작했다. 소년은 엄마가 도시락으로 싸준 김밥과 국을 남몰래 버릴 수밖에 없었다.

제 27회 부산국제영화제 ‘플래시 포워드’ 부문에 초청된 ‘라이스 보이 슬립스’(Riceboy Sleeps)는 1990년대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싱글맘 소영(최승윤 분)과 아들 동현(이선 황)의 이야기로 재캐나다 교포 앤서니 심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두 번째 장편영화다. 영화는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플랫폼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현지에서도 ‘제2의 미나리’로 각광받았다.

9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시네마운틴에서 만난 앤서니 심 감독은 “1994년 캐나다로 이주한 뒤 내 자신이 한국인인지 캐나다인인지 고민하곤 했다”며 “한국 문화와 음식을 숨기고 창피해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주인공 소영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홀로 아들을 키운다. 백인 친구들에게 놀림받는 동현에게 “태권도 포즈를 취하면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한다”고 조언하고 학교에서 인종차별을 당하자 서툰 영어로 “이건 인종 차별이다”라고 조목조목 따지기도 한다. 집에서 직접 김치를 담그고, 미역국을 끓이고 생선을 구우며 뿌리인 한국을 잊지 않는다.

심 감독은 “소영이란 캐릭터는 창작한 인물이지만 우리 어머니도 어린 시절 내게 ‘태권도’ 이야기를 하며 당당하라고 조언하곤 했다. 또 항상 집에서 음식을 해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고 회상했다.

3_FF_Riceboy Slee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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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소영이 췌장암에 걸려 아들의 뿌리인 강원도 조부의 집에 찾아가는 장면은 심감독의 외조부 고향인 강원도 양양에서 촬영했다. 심감독은 “영화가 캐나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제작지원을 받은 터라 짧은 시간에 촬영을 마쳐야 해서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 팬데믹까지 겹쳤다”며 “모든 장비를 들고 강원도 산길에 올랐다. 힘들었지만 나의 할아버지가 자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촬영했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꼈다”고 했다.

‘미나리’에 이어 다시금 한인 이민자의 삶을 다룬 ‘라이스 보이 슬립스’가 각광받는 상황에 대해 심감독은 “한국 이민자들의 역사가 비교적 짧은 편이지만 이민 2세대들이 다양한 문화분야에서 뿌리를 내리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더욱 많이 생기는 것 같다”며 “개인적으로 ‘라이스 보이 슬립스’ 대본을 쓸 때 ‘미나리’가 선댄스영화제에서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 우리 영화랑 내용이 비슷하지 않나 걱정하기도 했다”고 웃었다.

극 중 동현은 친구들의 놀림에 김밥을 버렸지만 지금 한국의 김밥은 OTT를 타고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음식으로 떠올랐다. 심감독은 “나도 어릴 때 김밥이나 컵라면을 도시락으로 싸갖고 가면 놀림받곤 했는데 고교 졸업 후 모교에 놀러갔더나 카페테리아에서 백인들이 라면을 먹고 있었다”며 “어린 시절 나를 놀리던 친구들이 이제는 맛있는 한국식당을 추천해달라고 한다”고 웃었다.

“BTS나 ‘오징어게임’의 세계적인 인기처럼 K팝, K푸드, K무비는 이제 전세계 주류다. 엔터테인먼트 분야뿐 아니라 한국이 전세계에서 무시 못할 나라가 됐다는 걸 느낀다. 내 영화도 20년 전이면 캐나다 현지에서 투자 받고 제작할 수 있었을까 싶다.”

최근 한국에서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를 관람했다는 심감독은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 송강호, 문소리 등을 꼽으며 향후 한국 배우와 협업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송강호, 문소리, 전도연, 최민식, 설경구 배우는 어릴 때부터 흠모했던 배우다. 유아인 배우는 카메라 앞에서 영화배우라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기회가 된다면 함께 작업을 하고 싶다.”

mulgae@sportsseoul.com

사진제공|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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