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춘자
KLPGT 강춘자 대표이사가 오는 4월 임기를 끝으로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시원해요.”

빈말이 아닌 듯했다. 평소보다 목소리 톤도 높은 듯했고, 발걸음도 경쾌해 보였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가 출범한지 30년이 지났고, 그 모든 세월을 함께했다. 개인 종목 특성상 개개인의 이익과 이권에 따라 합종연횡이 잦았고, 시기와 견제 등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모진 세월을 겪었으면서도 “일본과 대등한 수준으로 올라선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섭섭함보다 시원함이 더 크다”고 웃었다. KLPGA 산증인이자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KLPGT) 강춘자(67) 대표가 행정가의 삶에 마침표를 찍는다.

강 대표는 지난 2일 기자들과 만나 “이번 임기(4월15일)를 끝으로 KLPGT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다. KLPGA 이사 권한은 갖고 있지만, 이사회 참석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관여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도 이제는 사람들이 골프를 쉽게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 주니어 육성 쪽에도 관심이 많아,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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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춘자 대표는 KLPGA투어 부흥과 성장을 함께했다.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KLPGA 회원번호 1번인 강 대표는 한국 여자골프의 부흥과 발전을 이끈 ‘섀도 커미셔너’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협회 창립멤버이기도 했고, 1992년 전무이사로 행정 업무를 겸했으니, 그 세월만 30년이 흘렀다. 1999년부터 부회장(무보수)직에 선임됐고, 2011년에는 수석부회장으로 8년을 더 뛰었다. 2020년 부회장직을 내려놓고 투어자회사인 KLPGT 대표이사로 부임해 선수들의 복지향상에 열을 올렸다.

선수시절 강춘자 대표. 스포츠서울DB

“1983년 일본투어에 처음 갔을 때 대회장 분위기와 규모 등을 보고 가슴이 벅차올랐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한 강 대표는 “구옥희와 둘이 ‘우리도 한국여자골프를 이런 수준으로 만들자’는 얘기를 했다. 차별도 심했고, 김치냄새, 마늘냄새 난다고 피하는 선수도 있었다. 40년이 지난 지금은 KLPGA가 JLPGA와 견줘도 손색없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선수들의 실력은 한국이 월등하다”고 자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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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골프 전도사로 삶을 꿈꾸고 있는 KLPGT 강춘자 대표.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실제로 올해 KLPGA투어는 32개 대회에 총상금 314억원(평균 9억7000만원) 수준이다. JLPGA투어가 38개대회에 총상금 44억3000만엔(약 426억3200만원, 평균 11억 1600만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강 대표가 자부심을 느낄 만하다. 그가 처음 KLPGT 대표이사로 취임했을 때 KLPGA투어는 30개대회 총상금 253억원이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음에도 대회 수와 상금 규모 모두 소폭 성장했다.

강 대표는 “협회에서 보낸 시간을 돌아보면, 그래도 한국 여자골프가 일본을 뛰어넘는 데 작은 도움이 됐다는 것에 가장 큰 위로를 받는다. 후배들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환경에서 플레이하도록 후원사들을 찾아다니며 부탁만 한 것 같다. 도와달라고 읍소하면서도 한 번도 부끄러운 적이 없었다”며 웃었다. KLPGA투어의 외형적 성장은 저변 확대로 이어졌고, 이른바 박세리 키즈를 신호탄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화수분처럼 쏟아지는 동력이 됐다. 강 대표의 노력을 부정하는 골프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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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PGT 강춘자 대표.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행정가로서의 삶에 마침표를 찍는 강 대표는 잊고 지낸 ‘골프인’으로 돌아간다. 그는 “쉬라는 얘기도 있지만 투어가 더 발전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게 내 소임”이라며 “후배들을 육성하는 데 이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첫 3개월을 잘 배워두면 30년간 즐겁게 골프할 수 있는데, 요즘은 그립부터 잘못 배운 사람들이 꽤 많더라”고 안타까워했다. 골프 기본기를 말하는 강 대표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상상만으로도 즐겁다는 게 표정에 드러났다. 행정가로 공과가 뚜렷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골프 얘기를 할 때 눈빛을 보니 강춘자는 천생 골프인이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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