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울산=김용일기자] “솔직히 너무 죄송하더라.”

98일 만에 득점포를 가동한 울산 현대 공격수 엄원상(24)은 큰 동작의 세리머니 대신 서포터 앞에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지독하리만큼 3개월 가까이 침묵한 것에 미안한 마음이 먼저였다고 했다.

‘엄원상다운 플레이’로 부활을 알렸다. 엄원상은 지난 10일 울산문수경기장에서 열린 제주 유나이티드와 K리그1 18라운드 홈경기에서 3골에 관여하며 팀의 5-1 대승을 이끌었다. 전반 29분 절묘한 박스 침투로 페널티킥을 얻어내 바코의 선제골을 끌어낸 그는 후반 7분 에사카 아타루의 헤더 추가골을 돕는 정확한 크로스로 시즌 3호 도움을 기록했다.

그리고 후반 8분 트레이드 마크인 ‘치달(치고 달리기)’을 앞세워 묘기 같은 골을 만들어 냈다. 수비 지역에서 공을 따낸 그는 페널티박스까지 70m 질풍 같은 드리블 쇼를 펼쳤다. 제주 수비수인 임채민이 가로막았으나 뒷공간으로 공을 툭 차 놓은 뒤 빠른 발로 침투했고, 골키퍼 김동준이 전진한 것을 본 뒤 오른발 칩슛으로 마무리했다.

국가대표 선배 손흥민(토트넘)이 과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번리전에서 터뜨린 70m 드리블 골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 손흥민은 이 골로 국제축구연맹(FIFA) 푸스카스상을 받았는데 엄원상도 그에 못지않은 ‘원더골’을 터뜨린 것이다.

그가 득점한 건 지난 3월5일 강원FC와 2라운드 이후 처음이다. 전북 현대와 개막 라운드를 포함해 초반 2경기 연속골을 넣은 엄원상은 지난 시즌에 이어 오름세를 타는 듯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이후 경기에서 골이 터지지 않았고, 전체적으로 경기력이 떨어졌다. 최근 경기에서는 슛 기회에서 동료에게 내주거나, 소극적으로 때리는 등 자신감이 떨어져 보였다.

엄원상은 “자신이 없었고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동료에게 내준 게 맞다”며 “스스로 처져 있었다.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냈고 슬럼프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비로소 이날 자기 힘으로 어둠의 터널에서 벗어난 뒤 미소를 되찾았다. 일부 팬은 엄원상의 득점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엄원상은 제주전을 끝으로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대비하는 U-24 대표팀 ‘황선홍호’에 합류한다. U-24 대표팀은 오는 15일과 19일 중국 원정 친선 2연전을 통해 실전 조직력을 다진다. 황선홍 감독도 엄원상의 부활포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그가 전반기 끝자락 부활에 성공한 데엔 자기 자신과 싸움에서 이긴 게 크나, 홍명보 감독의 ‘지독한 믿음’도 따랐다. 울산은 엄원상 뿐 아니라 바코, 루빅손, 이청용처럼 정상급 2선 요원이 즐비하다. U-22 자원인 황재환, 강윤구 등의 컨디션도 좋다.

그럼에도 홍 감독은 지난해 17년 만 우승에 크게 공헌한 엄원상이 살아나야 후반기 레이스에 힘이 붙는다고 여겼다. 3개월간 득점이 터지지 않았음에도 꾸준히 경기에 기용했다. 심적으로도 편하게 이끌었다.

엄원상은 “감독께서 경기 앞두고 ‘오늘 좋은 기회가 올 것 같다’고 말씀했다. 실제 맞아떨어졌다”며 “나 때문에 경기를 못 뛰는 선수가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었는데 지속해서 믿고 뛰게 해줬다. 이제 짐을 덜어드렸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홍 감독은 “엄원상이 잘 극복해서 나 뿐 아니라 모든 선수, 스태프, 팬이 기쁘다”고 화답했다. 그의 말대로 주장 정승현을 비롯해 여러 선수가 엄원상 득점 직후 끌어안으며 축하해 줬다.

엄원상은 홀로 빛나지 않았다. 그처럼 장기간 슬럼프를 겪은 일본인 미드필더 아타루의 K리그 데뷔골을 도왔다. 아타루 역시 득점 직후 믿고 지지해준 홍 감독 품에 안겼다.

울산은 이날 바코가 멀티골을 넣고 득점 선두 주민규까지 10호 골을 터뜨리면서 5골 골잔치를 벌였다. 2연승에 성공, 14승2무2패(승점 44)를 기록하면서 2위권 팀과 승점 격차를 여전히 10 이상으로 벌리면서 기분 좋게 6월 A매치 휴식기에 돌입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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