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뛰고 또 뛴다. 얼굴은 비장하다. 멈추면 죽게 될 것이라는 공포가 서려 있다. 죽기 살기로 달리는 모습에서 진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3일 개봉한 영화 ‘탈주’ 속 이제훈은 보기만 해도 아찔할 정도로 고생이 많았다.
‘탈주’는 귀순을 결심하고 도망친 북한군 규남(이제훈 분)과 그를 쫓는 보위부 장교 현상(구교환 분)의 추격전을 그린 작품이다. 이제훈은 58kg까지 감량하고, 가슴과 복근, 등에 작은 근육을 만들어내며 미디어가 포착한 북한군과 싱크로율을 높였다. 목숨을 바치듯 열정을 다하면서 점차 규남과 가까워졌다.
이제훈은 “대본을 읽은 뒤 이 이야기가 넓은 스크린으로 보인다면 큰 감동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관객들도 ‘영화 잘 봤다’면서 웃으며 극장을 나올 거라 여겼다. 고통과 절망 속 질주하는 규남이 응원을 받았으면 했다. 한 땀 한 땀 계획하고 공들여서 촬영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규남에게 서사를 크게 부여하지 않았다. 귀순을 꿈꿀 정도로 북한의 사정이 어렵다는 게 배경으로 언급되지만 목숨을 걸고 도망치는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왜라는 질문은 오롯이 이제훈이 그리는 이미지로 만들어야 했다.
“규남이 현상에게 탐험가 ‘아문센’에 대한 책을 받고, 그 메시지를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잖아요. 실패할지라도 내 꿈을 펼치고 싶은 곳에 살고 싶었던 게 규남이었을 것 같아요. 그 마음을 이해했죠.”
이제훈은 2011년 영화 ‘파수꾼’과 ‘고지전’으로 혜성같이 영화계에 입성했다. ‘충무로의 신데렐라’로 불렸지만 데뷔 전 고생이 적지 않았다. 배우를 꿈꾸며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하려 했지만 가족의 반대로 공학도의 길을 걷다 군 제대 후인 200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과에 입학했다.
고깃집을 비롯해 건설 현장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단편 영화 촬영에 임했다. 규남이 가진 ‘질주의 시간’을 통과한 적 있는 이제훈이다.
“규남에게 제 삶을 많이 투영했어요. 영화를 좋아하고 멋진 배우를 롤모델로 삼으면서 연기자의 꿈을 키웠어요. 불확실성이 큰 직업이잖아요. 자격증도 없고, 누군가 선택해줘야만 살아남아요. 20대 중반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도전했거든요. 전 목숨 걸고 배우를 했어요. 집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거든요. 먹고 사는 문제와 진실로 내가 원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어요. 규남이나 저나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극 중에서 달리는 시간이 정말 많다. 발목이 접질리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많이 뛴다. 덕분에 몸이 성한 곳이 없다. 영광의 상처다.
“두 다리로 차를 따라가는 건 힘든 일이에요. 카메라가 달린 저 차를 따라잡지 못하면 죽는 거라 생각하고 달렸어요. 평소 건강관리를 잘하는 배우라 생각했는데, 촬영하다가 쓰러졌어요. 무릎이 성하지 않아요. 요즘엔 계단 내려갈 때 무릎이 아파요. 속상하긴 한데, 그래도 작품이 더 잘 나오길 원했어요.”
상대역인 구교환은 이제훈이 쏜 큐피드의 화살로 ‘탈주’와 성사됐다. 구교환과 꼭 만나고 싶다는 이제훈의 발언이 두 사람을 ‘탈주’로 모았다.
“교환이 형이 보여준 매력이 정말 컸어요. 함께 작업하고 싶은 열망이 컸고, 정말 신나게 연기했어요. 저보다 형인데 ‘어떻게 아기 같이 순수하지?’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차를 타고 가다 물티슈로 마술을 선사하는 장면은 정말 유니크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해요.”
‘광기의 이제훈’이란 수식어가 있을 정도로 이제훈의 매력은 돌아있는 눈에 있었다. 최근 이제훈의 필모그래피가 정의로운 역할에 머물고 있는 것은 장기를 애써 숨기는 모양새다.
“딱히 캐릭터로 작품에 접근하지 않아요. 좋은 이야기에 참여하려다 보니 비슷한 궤를 가진 인물을 맡았던 것 같아요. 선과 악, 미스터리를 가릴 생각은 없어요. 언젠가 또 제대로 된 광기를 보여드릴 날이 오겠죠.”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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