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정치에 큰 관심이 없다고 못박았지만 김희애는 정치 3부작을 이어오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퀸메이커’(2023)에 이어 올 초 개봉한 영화 ‘데드맨’, 그리고 지난 달 28일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돌풍’이다. ‘퀸메이커’에서는 정치인을 보좌했고 ‘데드맨’에서는 정치판을 쥐락펴락하는 정치 컨설턴트였다. ‘돌풍’에선 경제부총리다. 코치진에서 플레이어로 나선 셈이다.

김희애는 “저는 원래 제 작품을 두 번씩 안 본다. 한 번 보기도 힘들어한다. 이번에는 세 번을 봤는데, 계속 새롭고 재밌었다. 대사를 그렇게 많이 읽었는데도 새롭게 전달됐다”고 말했다.

가만히 있어도 품위가 전달되고 주체적인 여성을 연기해왔던 김희애에게 악역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돌풍’에서 연기한 정수진은 빌런이다. 어린 시절 운동권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했다가, 재벌의 돈 앞에 굴복한 정치인이다. 박경수 작가는 정수진을 두고 ‘타락한 신념’이라고 일갈했다.

“정수진도 처음엔 정의감에 불타는 여학생이었죠. 남편을 잘못 만나면서 안 좋은 사람들과 섞이게 됐어요. 어쩌면 정수진도 피해자일 수 있죠. 악당의 면모보다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접근했어요. 실속 없이 고생만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연달아 경직되고 단단한 인물을 맡은 김희애는 수동적이고 쾌활한 인물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다고 했다. 편안한 대사를 던지는 상황에 대한 목마름이 생겼다.

“저는 정치를 잘 몰라요. 왜 이렇게 저를 엘리트로 활용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어요.‘돌풍’에선 정치는 음식 재료일 뿐이고 인간의 몰락과 타락한 욕망이 담겨 있죠. 제가 주체적인 느낌이 강한가 봐요. 저 수동적이고 똑똑하지도 않아요. 수더분한 현실 연기도 잘하고요. 죄책감을 많이 느낍니다. 하하.”

베테랑 연기자지만 여전히 연기는 어렵다고 호소했다. ‘돌풍’은 유독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대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버거움이 컸다.

“박경수 작가님 오랜 팬이었어요. 이번에도 속도가 빠르고 대사도 많았어요.연기고 뉘앙스고, 정확한 대사 전달에 신경 썼어요. 자칫 무리하다간 계속 NG 나서 크게 사고 나겠더라고요. 대사 한 줄이 다 멋있었고, 귀했어요.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어서 아껴가면서 연기했어요.”

‘돌풍’에 설경구를 강력히 추천한 배우가 김희애다. 설경구에게 작품에 대한 어필을 최대한 했고, 설경구는 그 뜻을 받아들였다.

“생각해보세요. 설경구 말고 박동호에 누가 어울리나요? 이 나이에 설경구처럼 관능적이고 멋있는 배우가 없어요. 다른 배우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정말 열심히 연기한 게 엿보여요. 정말 고마워요. 우리 세대 가장 매력적인 배우죠. 상대로 만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고, 운명적으로 만난 것 같아요.”

최근 김희애의 복근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천명을 넘어선 나이에도 선명한 복근으로 대중의 시선을 끌었다. ‘수더분한 연기’가 그립다고 했지만 철저한 자기 관리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자전거 1시간을 타고 스트레칭을 30분 해요. 그건 매일 꼭 하고 있어요. 필라테스는 시간 될 때마다 하고 PT도 받아요. 제주에 내려가면 단지 안에 있는 헬스장에서 대충 운동하곤 하죠. 그리고 골프도 쳐요. 가만히 누워 있는 스타일이 못 돼요.”

오랜 시간 수없이 많은 작품을 오가면서 결국 단단하고 멋진 김희애라는 브랜드를 일궈냈다. 새로운 도전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성실하게 임해 온 결과물이다.

“제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멈추지 않았다는 거예요. 어떤 허들이 있어도 피하지 않고 넘어서 현재 진행형으로 일할 수 있었어요. 여러 상황이 무서워서 피했다면 다음 기회가 없을 거 같아요. 쉽지 않은 캐릭터가 왔을 때도 마다하지 않고 도전했더니 계속 다음 일을 하게 됐고 ‘돌풍’까지 이어졌죠. 저도 힘들고 촬영할 때 괴롭기도 하지만, 그걸 했기 때문에 바람이 선선하게 불 때 친구들과 운동할 때가 더 행복하게 느껴져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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