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잠실=윤세호 기자] 이미 경지에 오른 만큼 상대가 어떤 선택을 하든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점 기회가 찾아온 것을 반기면서 더할 나위 없는 결과를 낸다. KBO리그 역대 최다 타점에 빛나는 KIA 최형우(41) 얘기다.

이제는 시계를 거꾸로 돌린다는 표현도 진부하다. 그저 여전히 최고 타자다. 클러치 상황에서 특히 그렇다. 올시즌 타율 0.291인데 득점권에서는 0.361로 껑충 뛴다. 그러면서 타점 부문 선두. 경기당 1타점이라는 진귀한 기록을 만들고 있다.

타점의 질도 최상이다. 팀이 정말 필요할 때 타점을 올린다. 후반기 시작점인 지난 9일 잠실 LG전이 특히 그랬다. 상대가 추격하는 흐름에서 6회초 만루포를 쏘아 올렸다. 상대가 김도영을 고의4구로 거르고 최형우와 승부를 선택했는데 홈런으로 응답해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그러면서 최형우는 올시즌 78경기를 소화해 78타점을 올렸다. 만 41세를 바라보는 시기에 가장 많은 타점을 올린 것도 놀라운데 타점 페이스는 더 놀랍다. 숫자만 놓고 보면 경기 출장이 곧 타점이나 마찬가지다.

최형우가 전한 비결은 멘탈. 멘탈을 통해 상황에 맞는 타격이 이뤄진다는 게 최형우의 설명이다.

최형우는 6회초 상대가 김도영과 승부를 피한 순간을 두고 “아무 느낌 없었다. 제 나이 다들 아시지 않나. 그런 걸로 어떤 느낌이 든 것은 정말 예전 일이다. 이렇게 된 지 한참 됐다”고 미소 지었다. 이어 그는 “그냥 1아웃 만루니까 타점 올리기 좋은 상황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기분 좋게 상황을 마주했다”고 돌아봤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타석에 서니 행운도 따랐다고 해석했다.

최형우는 “상대 투수 이상영과 처음으로 붙었다. 슬라이더가 생각보다 많이 휘더라. 약간 롯데 반즈 같은 느낌이었다. 2스트라이크 먹고는 어떻게든 콘택트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런데 운이 따랐다. 정말 운 좋게 몸쪽에서 가운데로 들어오는 슬라이더가 왔다. 그전에 헛스윙한 슬라이더가 왔다면 또 헛스윙했을 텐데 운이 따랐다”고 웃었다.

운도 실력이다. 결정적인 순간 최고의 결과를 만든 것 역시 실력이다. 최형우는 “LG와 경기가 힘들다. 안 그래도 쫓아오는 흐름이라서 여기서 점수를 못 내면 또 쫓아온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홈런을 쳐서 더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미 역대 최다 1620타점을 쌓으며 타점 신기록을 경신하는 최형우다. 이날 국내 선수 만루 홈런을 비롯해 늘 최고령 타이틀이 붙는 것과 관련해 “그냥 최고령보다는 베테랑이라는 말이 더 좋은 것 같다”면서 “사실 다른 기록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타점만 본다. 솔직히 올해 타점은 나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분명 페이스가 떨어질 때가 있을 테니 미리 벌어놓는다는 생각으로 기분 좋게 받아들이겠다”라고 여유도 보였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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