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이상배 전문기자]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을 외친지 반백 년이 지난 즈음 ‘한강(54)’은 새로운 기적을 써 내려갔다. ‘한강의 기적’을 외치던 시절 태어난 그는 ‘노벨 문학상’이라는 기적과도 같은 감동적인 소식을 온 세상에 퍼트렸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를 저술한 그의 부친 한승원 작가는 “어릴 때부터 책을 읽고, 어두운 방에서 몽상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회상했다.

한강은 이때부터 문학에 대한 천부적 자질과 잠재 능력을 보유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는 자신만의 문체를 탄생하기 위한 집요하고 끈질긴 노력 끝에 마침내 ‘노벨 문학상’이라는 기적을 이뤄냈으리라.

한강은 1992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 재학중 ‘편지’라는 시로 연세 문학상을 받았는데, 당시에 심사를 담당한 국문과 정현종 교수는 “굿판 위 무당의 춤처럼 휘몰아치며 내적 열기를 발산하고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이런 불과 같은 열정의 덩어리는 무슨 선명한 조각과 또 달리 앞으로 빚어질 어떤 모습들이 풍부히 들어있는 에너지로 보인다. 능란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그 잠재력이 꽃피기를 기대해 본다”고 평했다.

이에 한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수 있을 줄 알았다. 추억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그때는 잘 몰랐다. 앓아누운 밤과 밤들 사이, 그토록 눈부시던 빛과 하늘을 기억한다. 그들이 낱낱이 발설해온 오래된 희망의 비밀들을 이제사 엉거주춤한 허리로 주워담는 것이다”라고 수상 소감을 발표했다.

당시의 심사평과 수상 소감 속에서 오늘날의 한강의 글에 대한 철학과 문체 바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대학 졸업 후 계간지 ‘문학과 사회’에 ‘서울의 겨울’외 4편의 시로 등단하며 한국소설문학상과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소년이 온다’ 등에서 ‘5·18과 4·3’의 처절하고 슬픈 비극의 현대사를 따뜻한 사랑과 섬세한 표현으로 담았다.

2016년에는 ‘채식주의자’로 아시아 최초 맨부커 국제상과 2019년 제24회 아르세비스포 후안 데 산 클레멘테 문학상, 지난해에는 프랑스 4대 문학상 하나인 메디치상을 한국인 작가 중 처음으로 수상했다. 마침내 지난 10일 스웨덴 한림원이 한강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하자 온 세계는 축하와 감동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한국 문학에 대한 거대한 ‘소프트 파워’ 검증 결과물이 만들어 낸 쾌거다.

한강은 123년 역사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인 노벨상을 받은 최초의 한국인이자 최초의 아시아 여성이다. 여성으로는 1938년 펄벅, 1993년 토니 모리슨, 2009년 헤르타 뮐러, 2022년 아니 에르노에 등에 이어진 18번째 수상자다.

한림원은 한강의 수상소식을 전하며 “자기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루고 인간 생명의 연약함을 드러내고 있다”며 “그는 몸과 영혼,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 사이의 연결성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고 칭송했다.

혹자는 “한국어의 풍부하고 다양한 표현들이 번역과정에서 잘 전달이 될 수 있을까”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영국의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는 그저 기우임을 증명했다.

한강의 기적같은 업적은 2020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같은 TV프로그램, BTS와 블랙핑크 같은 K팝 그룹의 폭넓은 대중적 성공에 이어진 것이기에 더욱 의미가 크다. 영화·게임·음악에 이어 문학에 이르기까지 ‘한국속의 세계’를 완성했다.

그가 대학 재학시절 발표했던 ‘편지’의 마지막 부분인 “꽃이 피고 지는길, 다시 그 길입니다. 바로 그 길입니다”라는 글귀를 되새겨 보는 시간이다. 당연히 그녀의 다음 편지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무척 기대하면서 말이다. sangbae0302@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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