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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펜싱 국가대표 백경혜

[스포츠서울 배우근기자] 백경혜(20·세종GKL)는 휠체어펜싱을 시작한지 1년만에 27kg을 감량했다. 2년 전 까지만 해도 170cm의 키에 몸무게는 85kg까지 나갔다. 그러나 펜싱을 시작하며 58kg까지 빠졌다. 미친 듯이 훈련하며 땀을 흘렸고 펜싱에서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

어릴 때는 태권도를 했다. 중학생이 되고선 선수로 뛰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했다. 뇌출혈이었다. 갑자기 쓰러졌다. 시험 끝나고 친구들과 놀러가기 위해 ATM(현금자동인출기·Automatic Teller Machine)에서 돈을 뽑고 나오다가 입에 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그 이후의 일을 백경혜는 기억하지 못한다. 오랜 기간 중환자실에 누워있어야 했다. 엄마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딸 앞에서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70kg대를 유지하며 태권도 헤비급 선수로 뛰던 건강한 딸이었다.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다행히 생명은 건졌지만 이전의 백경혜는 사라지고 없었다.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됐다.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고개를 들었다. 살도 계속 쪘다. 80kg 중반까지 몸무게가 늘었다. 자포자기의 시간이었다. 그러다 펜싱을 하게 됐다. 다니던 고등학교의 교기가 펜싱이었다. 오전에 학교수업과 펜싱교육을 받고 오후에 집에가는 조건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펜싱은 쉽지 않았다. 죽어라 찔렸다. 독기가 생겼다. 수년간 펜싱하던 친구를 이겨버렸다. 경험이 중요한 펜싱에서 그의 소질이 돋보인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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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박인수 감독과 백경혜. 평소 호랑이 감독으로 잘 알려진 박 감독은 사실 선수의 성적보다 우선하는게 있다. 장애인이지만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는 걸 더 강조하는 지도자다.

그 즈음 국가대표 백경혜를 만들어준 인연이 찾아왔다.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진행하던 꿈나무 대상으로 발탁되며 박인수 감독을 만나게 됐다. 이때부터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 호랑이 감독은 어린 제자를 엄하게 단련시켰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계속 달리게 했다. 그러다 넘어지면 “일어나. 뭐해? 바닥 차갑다”라고 하는게 전부였다. 박 감독은 “아이가 다쳤다고 오냐오냐 하며 집에만 있으면 안된다. 밖으로 나가 따가운 시선도 받아봐야 한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법”이라고 했다.

체력이 올라오자 본격적인 기술지도에 들어갔다. 박 감독은 “일단 사람은 만들었고 이제 선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그때를 회상했다. 백경혜는 지난해 전국휠체어펜싱선수권에서 사브르(A) 2위, 에페(A) 3위에 올랐다. 칼을 잡은지 1년 반 만의 성과였다.

박 감독은 백경혜의 자질과 가능성을 높게 샀다. 그는 제자에 대해 “기초체력이 있고 기본동작을 잘 한다. 5개 중에 4개는 100점을 넘어 120점이다”라고 칭찬했다. 박 감독이 말한 4가지는 체력과 동작, 그리고 사회생활, 예의바름이다. 부족한 1가지는 훈련하며 준비한 내용을 실전에서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박 감독은 “이제 풀 수 있는 방법이 보인다. 긴장해서 그 동작이 잘 나오지 않거나 느리게 나왔는데, 꾸준히 훈련하면 될 것 같다”라고 기대했다.

백경혜는 2020도쿄패럴림픽을 향해 부족한 점을 메우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엄마에게 안겨주고 싶은 선물이 있기 때문이다. 백경혜는 “항상 엄마에게 죄송하다. 늘 나를 위해 헌신하는데 내가 그동안 좋은 소식을 전한게 별로 없다. ‘엄마, 나 금메달 땄어’라고 말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박 감독은 그런 백경혜에게 “앞으로 국가대표로 롱런하길 바란다. 본인의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아니면 도태된다”라고 끝까지 긴장할 것을 당부했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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