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고척=윤세호기자] 100% 컨디션은 아니었다. 경기 초반에 특히 그랬다. 장기인 제구가 흔들리며 볼넷으로 위기를 자초했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지난해 가을 자신에게 악몽을 선사한 상대에게 복수하듯 무실점으로 투구를 마쳤다. 이전에는 없었던 절묘한 체인지업을 구사하며 상대 중심 좌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LG 외국인투수 아담 플럿코(32)가 더 높이 도약하고 있다.

이미 기량을 증명했다. 플럿코는 KBO리그 데뷔 시즌이었던 지난해 28경기 162이닝 15승 5패 평균자책점 2.39로 활약했다. 원투펀치를 이루는 케이시 켈리에 이어 다승 2위를 차지했고 평균자책점 부문에서는 3위에 올랐다. 후반기에 평균자책점 1.31로 올스타전 이후 최고 선발투수로 활약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가장 중요한 포스트시즌에서 무너졌다. 키움과 플레이오프(PO) 2차전에서 1.2이닝 8안타 6실점(4자책)으로 조기강판 당했다. PO 1차전 승리로 한국시리즈 무대를 응시했던 LG 또한 2차전 패배를 시작으로 3연패에 빠지며 허무하게 시즌을 마쳤다.

부진을 두고 후회하지는 않았다. 다만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다가오는 시즌 더 나은 활약을 펼칠 것을 다짐했다. 비시즌부터 사실상 장식에 가까웠던 체인지업을 연마했다. 좌타자 상대로는 거의 던지지 않았고 구종 비율 6.7%(스탯티즈 참조)에 불과한 체인지업의 활용폭을 넓히기로 했다. 캠프 초반 불펜 피칭에서도 염경엽 감독에게 직접 체인지업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2023시즌 첫 경기인 4일 고척 키움전에서 연마한 체인지업의 위력을 증명했다. 총 투구수 89개 중 체인지업이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포심 패스트볼 35개, 체인지업과 컷패스트볼이 나란히 15개, 슬라이더가 14개, 커브가 10개였다. 다섯 번째 구종이었던 체인지업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마지막 이닝인 5회말 선두타자 김혜성을 잡는 과정에서 체인지업이 특히 빛났다. 초구 몸쪽 체인지업으로 스트라이크 카운트를 선점했고 볼카운트 1-2에서 5구 바깥쪽 체인지업으로 헛스윙 삼진을 만들었다. 마치 그림처럼 절묘하게 바깥쪽으로 공이 도망가며 김혜성을 압도했다. 지난해까지는 볼 수 없었고, 던지지 못했던 플럿코의 체인지업이었다.

이날 플럿코는 5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첫 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됐다. 지난해 10월 자신에게 악몽을 선사한 키움에 복수하며 가볍게 새 시즌 출발선을 통과했다.

그냥 얻은 결과는 아니다. 플럿코는 4일 고척 키움전 후 “오프시즌부터 가장 노력했던 과제가 체인지업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더 나은 체인지업을 위해 여기저기서 조언을 구했다. 지나가는 투수들을 다 붙잡고 얘기할 정도였다”고 웃으며 “노력한 만큼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큰 과제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활약하지 못하면 커리어를 연장할 수 없는 외국인선수다. 조금이라도 부진하면 바로 교체다. 늘 분석 대상이 되고 시장에는 대체자들이 줄을 선다. KBO리그가 외국인선수들에게 만만하지 않은 리그인 이유다.

플럿코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재계약에 만족하지 않고 무기를 발전시켰다. KBO 5년차 시즌을 보내는 케이시 켈리가 그랬던 것처럼 보다 안정되고 다채롭게 던지며 마운드를 지키려 한다.

LG 염경엽 감독은 시범경기 기간 “플럿코가 켈리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켈리처럼 다양한 구종을 구사하면서 타자와 수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모습이 보인다”고 미소지었다. 올시즌 첫 경기 김혜성에게 던진 체인지업이 시즌 내내 유지된다면, 플럿코의 KBO 두 번째 시즌도 청신호다.

bng7@sportsseo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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