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스코츠데일=윤세호 기자] 재앙은 늘 어려운 이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다. 4년 전 코로나19가 그랬다. 많은 이들이 병을 앓거나 실업자 위기와 마주했다. 야구에서는 마이너리거가 그랬다. 2020년 초유의 리그 취소가 결정됐고 수백, 수천 명의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직업을 잃었다.

LG 새 외국인투수 디트릭 엔스(33)도 이를 피하지 못했다. 2020년 마이너리그가 문을 닫자 방출 통보를 받았다. 야구 인생 벼랑 끝에 몰린 순간이었다. 야구 선수로서 현역 연장, 혹은 새로운 직업을 찾는 것을 두루 고민했다. 현역 연장을 선택했고 독립리그에서 공을 던졌다. 보수가 만족스러울 수 없는 환경이었으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반전이 찾아왔다. 구속이 늘고 탬파베이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어 다시 프로 무대에 올랐다. 2021년에는 4년 만에 빅리그 복귀도 이뤘다. 2017년 빅리그 무대에서는 속구 평균 구속 89.6마일(약 144㎞)이었는데 2021년에는 94.3마일(약 151.7㎞)로 껑충 뛰었다.

지난 18일(한국시간) 엔스를 만나 그가 걸어온 길을 들었다. 엔스는 디팬딩 챔피언 팀의 1선발로서 연속 우승에 대한 각오도 밝혔다.

일단 첫인상 만점이다. 염경엽 감독은 캠프 절반가량이 지난 시점에서 엔스를 두고 “정말 괜찮다. 계약 후 과제로 전한 체인지업과 커브를 잘 만들어왔다. 늘 배우려는 자세가 정말 좋다. 우리의 요구를 잘 수용하고 늘 귀담아듣는다”며 “충분히 기대했던 1선발 에이스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엔스는 “사실 흔한 경험은 아니었다. 보통 시즌이 끝나면 감독이 아닌 투수 코치 정도가 다음 시즌을 위한 과제를 제안하는 경우는 있다. 그런데 감독이 직접 이렇게 피드백을 주는 게 낯설었다”면서도 “감독께서 제안한 모든 게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이었다. 투수로서 더 상장해야 한다고 느끼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체인지업과 커브 개발이었다. 계약 당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생각이 일치해서 신기하기도 했다”고 웃었다.

염 감독은 엔스의 앞으로 투구 내용과 관련해 “기대한 대로 속구가 참 좋다. 슬라이더도 괜찮다. 꾸준히 훈련하고 있는 체인지업과 커브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며 “아마 이렇게 네 가지 구종을 던지게 될 것 같다. 슬라이더가 스위퍼성으로 움직여서 경쟁력이 있다. 컷패스트볼도 있는데 이건 그렇게 좋지는 않아서 5피치가 아닌 4피치로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무나 KBO리그에 진입할 수 없다. 엔스가 지난 2년 동안 뛴 일본프로야구도 그렇다. 기본적으로 미국 무대에서 경쟁력을 증명해야 아시아리그로부터 오퍼를 받는다. 엔스 또한 야구 인생 반전을 이뤘기에 마이너리거 연봉의 적게는 3배, 많게는 10배 가량을 받으며 아시아 무대에 설 수 있었다.

엔스는 야구 선수로서 실업 위기에 처했던 순간과 관련해 “2019년 트리플A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만족할 수 없는 시즌이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리그가 문을 닫았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내가 무엇이 부족하고 어떻게 해야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지 생각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그는 “리그가 문을 닫으면서 내게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던지는 모습을 꾸준히 영상으로 찍고 훈련법에도 변화를 줬다. 내 투구 메커닉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점검하면서 교정했다. 이후 독립리그에서 던지는 데 느낌이 정말 좋았다. 이제 무언가 된다는 느낌이었다. 때마침 탬파베이에서 제안도 왔다”고 역경을 딛고 다시 올라선 순간을 회상했다.

백업 플랜도 있었다. 코로나19와 마주한 시기에 공부도 병행했다. 온라인으로 경영학 대학 수업을 들었다. 엔스는 “온라인으로 강의를 들으면서 그동안 내가 너무 야구에만 매몰됐다는 생각이 들더라. 공부하는 시간이 내게는 또 다른 여유를 갖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야구 선수로서 커리어가 끝나면 무엇을 할지 결정할 수 있게 만들어준 시간이기도 했다”고 미소 지었다.

물론 올해 임무는 사무실 업무가 아닌 마운드 위에서 한다. 디펜딩 챔피언 팀의 에이스. 그리고 완전체 좌투수로서 활약이 요구된다. 엔스는 “딱히 부담은 느끼지 않는다. 그저 매 경기 나갈 때마다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면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복잡하지 않게, 단순히 생각하면서 팀에 승리를 가져오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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